등록 : 2005.12.07 22:20
수정 : 2005.12.07 22:20
사설
알렉산더 브시바오 주한 미국 대사가 어제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북한은 범죄정권”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예로는 마약 밀매와 위조지폐 제조 등을 들었다. 미국 정부의 고위 관리는 물론이고 6자 회담에 적대적인 네오콘들도 잘 하지 않는 강경 발언이다.
우선 범죄정권이라는 규정이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공식 입장인지 묻는다. 대북한 인식과 정책에서 바뀐 것이 있다면 그 이유와 목표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미국 정부는 이제까지 북한을 ‘불량국가’나 ‘테러지원국’으로 꼽았으나 범죄정권이라고 한 적은 없다.
충분한 증거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미국이 북한 정권을 범죄자로 기소하는 검사 구실을 하려면 세계가 납득할 만한 물증을 내놓아야 한다. 미국은 3년 전 고농축우라늄 방식에 의한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제기해 사태를 악화시켜놓고도 아직까지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미 북한에 대해 취한 금융제재를 합리화하기 위해 범죄정권이라고 했다면 국제사회의 이해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6자 회담에 끼칠 악영향도 문제다. 브시바오 대사는 6자 회담과 별개라고 했지만, 지금처럼 북-미 사이의 불신이 심한 상황에서 별개일 수가 없다. 이를 알면서도 강경 발언을 한 데는 6자 회담의 진전을 막으려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간다. 그는 또한 “북한이 에너지원으로 경수로를 원하는 것이 현명한지에 회의적”이라고 말해, 9·19 공동성명을 부인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
그러지 않아도 5차 2단계 6자 회담의 일정을 잡기 위한 협의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럴 때 미국 대사가 부임하자마자 회담 상대국인 북한을 정면으로 비난하는 데 앞장서는 것은 부적절하고 위험하다. 브시바오 대사는 외교관답게 처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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