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16 22:21
수정 : 2005.12.16 22:21
사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재조사한 경찰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어제 유서의 필적은 강씨의 것이 아니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또 검찰이 강씨를 자살방조 피의자로 예단하고 이에 짜맞춰 수사한 것 같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은 1991년 재야단체 간부인 강씨가 동료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그의 분신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돼 대대적인 공안몰이의 빌미가 됐다. 그러나 검찰이 결정적 근거로 제시한 필적감정 결과를 둘러싸고 지금까지 조작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과거사위는 필적감정을 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검찰이 외압을 행사한 정황 등을 새롭게 드러냈지만, 이번에도 사건의 조작 여부를 명확히 가리지는 못했다. 짜맞추기 수사의 정황과 의혹이 있다는 반쪽 결론에 그친 셈이다.
진실규명의 가장 큰 걸림돌은 검찰의 소극적인 태도다. 과거사위가 이 사건의 핵심인 필적 증거를 새롭게 찾아 원본과 비교하려 했지만 검찰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수사기록 공개 압력이 커지자 일부 국회의원들한테 2시간 동안 열람을 허용하는 면피성 조처로 피해갔다. 그렇다고 국방부·국가정보원·경찰처럼 적극적인 과거사 규명 의지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검찰은 경찰·국정원 등 초기 수사기관이나 판결을 내린 법원의 몫이라며 이 문제를 줄곧 회피해 왔다. 자체 조사도 않고 외부기관 조사에 협조도 않겠다면 국민들이 어떻게 납득하겠는가. 그러면서 ‘경찰이 이젠 법원이 할 일까지 한다’며 비아냥거릴 자격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이달 초 출범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걸 두려워해서는 이 약속을 지킬 수 없다. 법원의 재심과는 별도로 검찰의 전향적인 진실규명 의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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