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20 20:15
수정 : 2005.12.20 20:15
사설
이달에만 인혁당·민청학련 사건(국가정보원),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경찰)에 이어, 엊그제는 5공화국 초기 강제징집·녹화사업(국방부)의 진상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가해자인 국가기관 스스로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는 것은, 피해자 명예회복과 보상·배상 등 진정한 과거청산으로 가는 첫걸음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묻혔던 진실의 일부도 새롭게 드러났다. 국방부는 강제징집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구두 지시를 국방부 장관이 적어 병무청장에 전달한 기록을 찾아냈다. 3년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를 암시하는 문서를 찾는 데 그쳤다는 점에서 적잖은 성과다. 유서대필 사건에서 찾아낸 새로운 필적도 재조사가 없었으면 묻힐 뻔한 새로운 증거다.
그러나 과거사위가 고문이나 조작사건 관련자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건 매우 실망스럽다. 확실한 증거 없이 총체적 책임을 대통령 등에 떠넘기는 것도 실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물론 많은 시간이 흘렀고 관련자의 비협조 등으로 물증과 증언 확보가 쉽지 않았을 터이다. 하지만 뭉뚱그려 사과하고 책임 규명을 회피하는 듯한 조사 결과는 고백의 진정성을 훼손시킨다. 재심 등을 통한 명예회복을 바라는 피해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도 사과에 앞선 진실 규명임을 기억해야 한다.
각종 과거사 기구의 법률적 정비도 시급한 문제다. 이달 초 출범한 과거사위원회를 포함해 현재 7개 기구가 활동 중이다. 제주 4·3 사건 등 5개 기구는 조사가 끝났다. 시차를 두고 개별법에 따라 만들어지다 보니 중복 조사 등 비효율이 우려된다. 애초 과거사법에 흩어져 있는 법안을 포괄하려던 것이 입법 과정에서 후퇴한 탓이 크다. 지금이라도 시행령을 손봐 조사범위, 권한과 책임 등을 명확히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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