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22 21:58
수정 : 2005.12.22 21:58
사설
아무런 죄도 없는데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를 하는 것처럼 세상에 억울한 일도 없다. 누명을 쓴 사람의 삶과 인격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난다. 영혼에까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가 새겨진다. 부녀자들을 흉기로 위협해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구속됐던 울산의 40대 가장이 뒤늦게 무죄가 드러나 석방됐다고 한다. 아직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이땅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놀라움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다행히 진범이 붙잡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막막해진다.
이번 사건은 검찰과 경찰의 총체적 부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학수사나 시민의 인권은 뒷전이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놓고 서로 ‘잘낫다’고 싸우는 것 자체가 한심하고 혐오스러울 뿐이다. 경찰은 범인으로 몰린 한아무개씨가 처음부터 무죄를 주장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범인으로 옭아맸다. 이러고도 과연 경찰이 수사권을 달라고 주장할 염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더욱이 한씨는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팬티를 벗기는 등 인권을 유린했다고 호소했다. 앞으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뒤따라야 할 대목이다.
검찰 또한 입이 열이라도 할말이 없어 보인다. 그동안 검찰은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의 견제와 감시통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경찰 수사과정의 부당한 인권침해를 구제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경찰 수사권 독립에 반대해 왔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 수사의 잘못을 짚어내 인권을 구제하기는커녕 인권침해의 공범 노릇을 톡톡히했다. 한씨가 범인이라는 확신도 없이 기소했고, 진범이 붙잡힌 뒤에도 일주일이나 꾸물대다 풀어줬다. 인권보호에 대한 검·경의 투철한 사명의식 없이는 수사권을 어떻게 조정해도 모두 헛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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