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27 21:25
수정 : 2005.12.27 21:25
사설
우리 현대사에 ‘사법살인’이란 치욕적 상처를 남긴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법원이 어제 재심 결정을 내렸다. 유족과 인권·종교 단체의 끊임없는 진상규명 노력이 거둔 열매다. 그러나 관련자 8명이 확정판결 하룻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30년 만에야 명예회복의 길이 겨우 트인 건 만시지탄이다. 특히 ‘빨갱이 가족’이란 멍에를 쓰고 한맺힌 삶을 살아온 관련자와 유족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불과 한 해 전에도 이 사건에 연루돼 8년 옥고를 치른 이재형씨가 삶을 마감했다. 관련자 대부분이 노령인 점을 감안해 엄정하고 신속한 재심이 이뤄져야 한다.
독재정권 시절 자행된 수많은 인권유린과 고문·조작 사건 피해자들이 진실을 찾고 명예를 회복하는 길은 여전히 험하고 좁다. 현행법상 재심 사유가 ‘확정판결로 고문·증거위조가 드러난 경우 등’으로 엄격히 제한돼, 재판은커녕 재심 청구나 개시 결정조차 드물다. 인혁당 사건만 해도 의문사위원회와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이 고문·조작 혐의를 드러내지 않았다면 재심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 이런 사건은 국가권력에 의해 증거가 철저히 인멸됐거나 아예 재판기록이 조작된 경우도 다반사다. 법원은 인색한 법 해석에서 벗어나 재심 사유를 전향적으로 넓혀야 한다. 최근 출범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재심 사유로 법제화하는 것도 방법의 하나다.
국가범죄에 대한 민사상 소멸시효를 배제·연장하는 방안도 서둘러 검토해야 한다. 잘못했지만 시효가 지났다고 배상을 거부하는 것은 국가의 도리가 아니다. 법적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그로 인한 사회적 법익이 더 크다. 국가범죄의 온상인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가 올해도 마무리되지 않고 있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큰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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