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27 21:28
수정 : 2005.12.27 21:28
사설
허준영 경찰청장은 끝까지 비겁했다. 허 청장은 고 전용철·홍덕표씨 사망사건에 대해 사과를 하면서도 자신의 사퇴는 거부했다. 서울경찰청장 등 ‘아랫사람들’만 문책하고 자신은 빠져나가겠다는 이야기다. “징계를 당해야 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징계하는 꼴”이라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적은 정곡을 찌른다.
허 청장이 사퇴해야 할 이유는 많다. 첫째, 그동안 경찰의 시위 진압 과정에서 불상사가 많았으나 한꺼번에 두 사람이나 숨진 사태는 일찍이 없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도 이 정도 사안이면 경찰 총수는 물론 주무 장관까지 책임을 지고 자리를 물러났다. 공은 자신이 챙기고 책임은 부하에게 떠넘기는 비겁한 장수를 과연 아랫사람들이 믿고 따르겠는가.
둘째, 허 청장의 어처구니없는 일처리 방식을 볼 때 경찰 총수로서의 자질마저 의심스럽다. 전용철씨 사망 원인에 대해 “간경화나 술을 마신 게 원인일 수 있다” “상처는 넘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 따위의 ‘어록’은 단적인 사례다. 제대로 된 경찰청장이라면 정확한 진상파악을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시위진압 개선책도 서둘러 마련해야 옳았다. 경찰의 책임 축소에만 급급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발표가 있고서야 허겁지겁 사과를 한 것은 그의 안일한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셋째, 허 청장의 대국민 사과에서도 진정한 책임 의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임기제 청장으로서 평화적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더욱 노력하는 게 저의 소임”이라는 말은 그가 아직도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평화적 시위문화’ 따위의 모호한 말로 책임을 비켜가려는 자세로는 경찰의 거듭나기는 기대할 수 없다. 다시 한번 허 청장의 사퇴를 촉구한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