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운전면허 전문학원이 교육생에게 지문인식기를 통한 출석 확인을 사실상 강제하는 관행이 여전하다고 한다. 경찰은 지난해 도입한 지문인식 전산시스템이 인권침해 논란을 부르자, 이를 강제가 아닌 권고사항으로 바꾸고 서명 등으로 대체할 수 있게 개선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현실은 지문 확인을 거부하는 교육생은 번거롭다는 이유를 들어 아예 등록을 받지 않는 학원이 대부분이라고 한다.국가면허 발급을 대행하는 민간 학원이 부정·대리 출석을 엄격히 관리하겠다는 취지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동의하지 않는 이들까지 지문 확인을 사실상 강제하는 건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다. 애초에 지문인식 기록이 곧장 경찰청에 연결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대체수단 운운하는 것도 낯간지럽다.
더 큰 문제는 편의와 효율성만을 고려해 지문 등 생체정보 인식기가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추세다. 개인 생체정보는 사생활과 직결된 정보이며, 유출될 경우 상업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많다. 국가기관조차 개인정보 수집·관리를 엄격히 제한하는 마당에, 이를 민간업체에 온전히 맡기는 것은 인권침해 가능성을 방조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학교 식당이나 대학 도서관에 설치한 생체정보 인식기에 대해 ‘인격권과 사생활을 침해한다’며 시정권고를 내린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지문·홍채·정맥·음성 등을 이용한 생체인식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상업적 활용도 역시 커지고 있다. 그러나 개인생체정보의 수집·관리·폐기와 관련한 규정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정부는 제공자의 동의를 얻어 엄격히 관리한다는 초보적인 ‘생체정보 보호 기준’조차 확정하지 못했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과정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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