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31 16:22
수정 : 2006.01.31 19:59
"`마당발' 이기우 통해서도 안되면 애당초 안되는 것"
총리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한 공무원"
'말단 공무원에서 차관까지…'
9급 공무원에서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거쳐 차관까지 오른 이기우 교육차관은 공무원 사회에서 `고졸 9급 신화'의 주역으로 꼽힌다. 빈농 출신으로 부산고에 입학한 그는 객지에서의 궁핍한 고학 생활에 병까지 얻어 고교를 4년만에 졸업했고 대학진학도 실패했다.
가난에 찌들려 돈을 벌면서 재수하겠다는 생각에 1967년 9급 시험을 치러 부산 대연동 우체국 서기보로 공직의 첫발을 내디뎠다가 다시 시험을 거쳐 고향인 거제군 교육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 때 재수를 한다는 생각으로 그럭저럭 지내던 중 상사한테 밉보여 다른 부서로 밀려나는 일을 겪은 뒤 공무원 생활을 하는 동안 '정성'을 최우선 덕목으로 삼게 됐다.
이후 일선 교육청과 교육부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그는 이해찬 국무총리가 98~99년 교육장관을 역임하면서 개혁정책을 쏟아낼 때 `끈끈한' 인연을 맺었다. 당시 교육환경국장으로서 개혁정책을 보좌, 능력을 인정받아 기획관리실장으로 내정됐으나 이 총리가 물러나면서 좌절되는 듯했다.
그러나 곧바로 후임 장관에 의해 기획관리실장에 발탁돼 교육부 수장이 7번 바뀌는 3년반 동안 줄곧 기획관리실장을 맡아 대국회 업무를 처리했다. 앞서 1989년 과장으로 국회 파견 근무를 할 때부터 "이기우를 통해서도 민원이 안되면 애당초 안되는 것"이라는 말이 돌 정도였고 '발 치수 320㎜ 마당발'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2003년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으로 있을 때는 일일이 직원 300명의 얼굴과 이름을 모두 외울 정도로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했다. 업무처리가 치밀해 깐깐하다는 이 총리로부터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한 공무원'이라는 극찬을 듣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차관 인사 때마다 하마평에 올랐지만 이돈희 한완상 이상주 윤덕홍 등 전임 장관들이 경상도 출신인 탓에 상피제에 걸려 번번히 좌절됐다가 끝내 교육차관에 올랐다. 이성한 기자
ofcours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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