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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여성위원회 등 당원들이 8일 오전 평창동 최연희 국회의원 집 앞에"최 의원 공개수배" 내용의 패널을 붙이러 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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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전문가 ‘성추행 의원’의 노림수와 계산
<동아일보> 기자를 성추행해 의원직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최연희 의원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10일째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잠행중이다. 문제가 불거진 뒤 정치권은 최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기정사실로 여겼지만,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 파문’이 터지면서 ‘의원직 사퇴’를 둘러싼 상황은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최 의원이 잠적한 채 여론 변화를 지켜보며 ‘버티기’로 돌아선 것이다. 최 의원의 지역구 여성단체들이 “사퇴반대”를 공개 표명하고 나선 것도 최 의원이 버티는 명분의 하나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최 의원과 한나라당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으나 당사자인 최 의원은 아무 말이 없다. 그는 무엇을 믿고 버티고 있을까? 여성의 날, “사퇴” 한목소리… “최연희를 공개수배합니다”“한나라당은 실종신고, 휴대폰 위치추적이라도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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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성폭력 추방선포식 열린우리당 정동영의장과 당직자들이 8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성추행·성폭력 방지 선포식‘에서 최연희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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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과 시민단체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최의원 사퇴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공개수배를 요구하는 등 압박을 더 강화했다. 또 한나라당이 최 의원 찾기에 소극적이라며 한나라당에 연대책임을 물었다.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전세계적으로 성추행을 저지른 의원들이 꽤 있었지만,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의원직을 유지한 적이 있느냐”며 “한국에선 성추행을 저질러도 열흘만 잠적하면 살아날 수 있다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우 대변인은 “한나라당은 최 의원을 남겨놓고 무슨 권익신장과 권익보호를 주장할지 묻고 싶다”며 “한나라당은 실종신고를 하든지,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하든지 아니면 부산 골프장을 조사하듯 동해·삼척으로 가서 탐문조사를 해서라도 최 의원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라고 권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이 연락이 안된다는 이유로 최연희 성추행 사건을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박용진 대변인은 “(최 의원이) 공천 신청자와 만나 회포를 푸는 행동을 하는 등 시간이 지나 잠잠해 질 때까지만 기다리자는 당 지도부와 교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의혹이 있다”고 한나라당을 겨냥했다. 민주노동당은 이날 최 의원 자택 앞에서 사퇴를 촉구하는 규탄대회를 하고 최 의원을 공개수배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민노당은 또 최 의원의 ‘의원직 제명결의안’을 제출할 방침이며, 최 의원 지역구인 동해·삼척에서 지역주민을 상대로 최 의원 사퇴를 촉구하는 1만명 서명운동도 벌이기로 했다. 한편,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가 전국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 의원의 의원직 사퇴에 대해 78.3%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연희 버티기 왜? “사퇴반대” 지역민심이 비빌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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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자 성 추행사건과 관련,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최연희(동해.삼척)의원의 지역구인 강원도 동해지역에는 6일 최 의원을 지지하는 각종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이 가운데 일부는 칼 등으로 찢겨져 눈길을 끌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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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기자와 소송, 자연인보다 국회의원이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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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29일 오후 국회에서 최재천 열린우리당 간사 등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최연희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회의를 열지 않자 단독으로 개회를 한 뒤 국가보안법 등의 법안을 상정해 뒤늦게 참석한 최연희 법사위 위원장과 한나라당 의원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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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의원이 검사 출신의 3선 의원으로 현행 법 체계의 ‘맹점’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어, ‘노련한 대응’을 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성추행 같은 중범죄에 별다른 제재를 할 수 없는 게 국회법의 현실이다. 한나라당이 사태를 수습하는 차원에서 최 의원을 윤리위원회에 회부했으나 지난 2일 열린 국회 윤리특위는 징계는커녕 최 의원에 대한 윤리심사도 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최 의원의 소명을 놓고 팽팽하게 맞서다 말싸움 끝에 회의가 무산된 것이다. 윤리특위가 최 의원의 징계를 결정하더라도 윤리위반 사실만 통보하면 끝난다. 법조인 출신 3선 의원에다 17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지낸 최 의원은 국회 운영과 현행 법 체계의 맹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최 의원은 법사위원장 시절 이런 점을 십분활용한 바 있다. 2004년 연말 국가보안법 개정을 놓고 여야간 대립이 한창이던 때 최연희 법사위원장은 의사봉을 잡지 않는 방법으로 기한을 넘겨 법안이 자동폐기되도록 하는 ‘노련함’을 보였다. 최 의원이 의원직을 고수하는 진짜 이유는 <동아일보> 기자와 소송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누구보다 법을 잘 아는 최 의원이 소송에 휘말릴 경우 자연인보다 국회의원 신분이 나을 것이란 계산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성추행이라는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범죄가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최 의원의 정치생명은 사실상 끝났다. 그럼에도 버티기로 일관하는 것은 국회의원이라는 기득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여기자를 성추행한 국회의원은 세계 여성의 날인 8일에도 여전히 ‘잠행’중이다. 법률전문가인 ‘성추행 국회의원’은 여론의 포화라는 소나기를 피하면 법의 보호를 받으며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박종찬 김미영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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