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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구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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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구 의원, 선거 패인놓고 ‘시장 외면 탓’ 분석
예고된 ‘싸움’이 시작되는가?
열린우리당의 5.31 지방선거 참패 이후 당 안팎에서 패인에 대한 분석과 심층좌담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본격 ‘진단’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번 선거가 ‘여당의 참패’라는 인식에는 동일하지만 무엇이 그 패인인가에 대해서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하늘과 땅 차이다. 의원들끼리 펼치는 논쟁은 단순한 ‘당내 갈등’으로 봉합될 수 있을지, 당을 파국으로 이끌 노선 투쟁이 될지 관심이다.
지난 5일 이목희 의원은 열린우리당 홈페이지에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글을 올려, 이번 선거의 결정적 패인이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다고 표방하면서도 제대로 서민 계층에 다가가지 못한 데서 비롯한 것이라며 선거이후 당내 일각의 “개혁 후퇴” 움직임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한 바 있다.
이 의원은 이 글에서 부동산· 세금정책을 재검토하자는 당내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 “이는 서민과 중산층을 우리당으로부터 등돌리게 만든 자들이 어려운 조건을 틈타 벌이는 빗나간 행동”이라며 “신뢰의 붕괴는 부동산·세금정책을 강화한 데서 온 것이 아니라 철저히 강화하고 정교하게 만들지 못한 데서 초래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책 후퇴 움직임에 대해 경고했다.
당내 개혁 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목희 의원의 주장에 대한 ‘실용’ 노선의 반격이 나왔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비례대표 출신의 정덕구 열린우리당 의원은 7일 홈페이지(www.dkchung.net)에 “당의 중대국면에서 의원총회에 들어가며” 제목의 글을 올려, 선거 패인에 대해 이목희 의원과 정반대의 해석과 평가를 했다.
정 의원은 “그동안 말을 너무 아꼈던 것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며 “잘못된 점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당당하게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고 글을 시작하며, 당의 기존 정책에 대한 본격 비판을 쏟아냈다.
정 의원은 선거 패배에 대해 열린우리당내 시장 우선의 입장에서 패인을 진단하고, 교조적 입장에서 벗어나 시장경제의 논리에 충실한 중도시장주의적 입장으로 선회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지지계층을 찾아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패인으로 여섯가지를 지목하고 이를 위한 처방을 제시했다.
정 의원은 구체적으로 정부와 여당의 입안한 정책이 시장에서 실패한 사례로 부동산 정책을 예로 들었다.
정 의원은 “의식주·교육·고용같은 국민의 기본적 욕구와 관련된 민생정책에는 실패하면서, 국민이 실제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의 ‘ 이상주의적 정책’의 실험에 대해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며 “막상 우리가 강행처리했던 법률이 입법 의도대로 사회가 변화되어 가고 있”지 못하다고 진단했다.
정의원은 “강도높은 대책과 상관없이 집값은 계속 급등했다”며 이의 원인을 외환위기 이후 과잉유동성 문제로 보아 정부에 원인 제공의 책임이 있다고 평가했다. 정 의원은 “공격대상으로 삼았던 투기세력은 더욱 배가 부르고 보호대상인 서민층은 오히려 더 피해자가 되는 기현상”이 왔는데도 “지나치게 역발상에 의존했다”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경색된 경제를 소통시키기 위한 대책으로 세제 개편을 통한 부동산 거래 활성화와 기업부문의 규제 완화를 주문했다.
정 의원은 구체적으로 △ 중장기 보유 1세대 1주택을 중심으로 1~2년간 양도세 한시적 비과세 △과세 시가표준이 올라간 만큼 거래세 인하 △ 보유세의 분납제 대폭 확대 등과 함께 △출자총액제한제도 규제 폐지·완화 △증세 정책의 포기 등을 요구했다.
△정의원이 지목한 선거 패인
1. 정부· 여당을 좌파정권이라고 오해하는 국민의 마음을 바꾸지못했다.
2. 정부· 여당의 정책이 실패했다고 대다수의 국민이 느끼고 있다.
3. 정부· 여당이 시장을 무시하고 시장에 대해 오만했다.
4. 국민은 정부· 여당이 과거에만 매달려 미래를 등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5. 국민에게 신망을 주지 못하는 (대통령의) 언행이 계속되어왔다.
△ 정의원이 제시한 정부·여당 정책 전환의 방향
1. 중도시장주의로 전환해, 시장에 좀더 근접한 정책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
2. 기업을 중시해야 한다. 경제정책의 출발점을 가계부문에서 기업부문으로 전환해야 한다.
3. 부동산시장, 기업투자, 가계부문 등 실물 경제의 막힌 부분을 뚫고 소통시켜야 한다.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위해 1세대 1주택에 대해 양도세 한시적 비과세, 보유세 분납제 등 필요
4. 경제정책의 사령탑 청와대에서 경제부총리로 이동
5. 전통적 지지세력 대신 새로운 지지세력의 확보시급
6. 경색되고 교조적인 정치· 정책 프로세스 대신 전문가 위주의 재편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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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구 의원] 당의 중대국면에서 의원총회에 들어가며
I. 들어가며
우리 당은 지금 엄청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말을 너무 아꼈던 것에 대해 반성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점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당당하게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소수의 큰 목소리에 다른 목소리가 함몰되는 당내 분위기 탓이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의 직무유기는 안된다는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이번만큼은 참회하고 반성하고 정리해야 우리 당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렇게 나왔습니다.
II. 民意는 무엇이고, 왜 그런가?
이번 선거에서 국민이 보여준 메시지는, 정부· 여당을 준엄하게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民意가 그렇게 모아진 이유를 크게 다섯 가지로 보았습니다.
첫째, 정부· 여당을 좌파정권이라고 오해하는 국민의 마음을 바꾸지못했다는 점입니다.
‘국민참여 개혁’이나 ‘한반도 평화체제 확립’ 등 그동안 정부· 여당이 내걸었던 정책기조들과, 강정구 교수사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국민의 상당수가 정부· 여당을 좌파정권이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국민 대다수는 좌파세력이 늘어날 때 야기될 파장과 재앙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오해하면, 우리 입장을 친절하게 설명해서 오해를 푸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한편으로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개선할 점을 찾아나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국민이 잘못 알고 있다’, ‘언론이 잘못 보도하고 있다’고 계속 주장하니 국민은 더욱 서글프고 화가 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국민은 엄중한 문책을 내린 것이고 그 결과, 우리는 낙제점을 받은 것입니다.
둘째, 정부· 여당의 정책이 실패했다고 대다수의 국민이 느끼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민의 ‘의식주-교육-고용’같은 기본적인 욕구와 관련된 민생정책에는 실패하면서, 국민이 실제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의 정책, 소위 이상주의적 정책들을 불안정하게 많이 실험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은 불안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싸움하고 강행처리했으며, 파행이 거듭 이어졌습니다.
그렇다고 막상 우리가 강행처리했던 법률의 집행결과는 어떻습니까? 과연 입법 의도대로 사회가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까?
물론 우리 나름대로 억울한 부분도 있을 것이고, 할 만큼 했다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정책들이 지속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잘해서 얻은 몇 가지 성과마저도 설득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셋째, 정부· 여당이 市場을 무시하고 시장에 대해 오만했다는 점입니다.
市場 앞에 지나치게 겸손하지 못하고 오만한 자세를 보이며 시장실패만 강조하고 시장의 힘을 무시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해야 합니다. 강압적 방법으로는 시장을 다루기 어렵습니다.
부동산 문제만 보더라도, 강도높은 대책과 상관없이 집값은 계속 급등했습니다. 집값 상승의 원인은 사실상 땅값 상승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땅값 상승이 분양가를 높였고, 여기에 투기세력이 몰려들었으며, 이에 외환위기 이후 늘어난 과잉유동성 문제가 증폭됐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최초의 원인제공자는 정부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당초 Simulation을 많이 했다고 발표했는데, 결과는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공격대상으로 삼았던 투기세력은 더욱 배가 부르고 보호대상인 서민층은 오히려 더 피해자가 되는 기현상, 즉 friendly fire 현상도 함께 초래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지나치게 역발상에 의존했습니다. 물론 역발상이 창조적 파괴과정을 통해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만 정부·여당은 지나치게 신봉했습니다. 그 결과‘경제정책’에 ‘역발상’을 접목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경제는 흐름을 중시하는 분야이므로 흐름을 선순환시키면서 정상화되도록 이끌어야 경제정책의 실효성이 높아집니다. 그런데도 금융조치와 조세정책을 균형있게 배분하지 못하고 세금증액으로만 고집스럽게 대응했습니다. 특히 대통령의 경제정책기조를 성역시함으로써 시장과 화합하지 못했습니다.
깊은 고뇌나 연구토대 없이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관철하기 위하여 싸우고 강행처리하는 정치· 정책 process을 보면서, 국민들은 마치 accelerator(가속장치)와 brake(제동장치)를 동시에 밟았을 때, 공회전하며 연기만 날 뿐 막상 車는 앞으로 가지 않을 때처럼 답답함을 느끼고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경제정책들이 이미 시장에서 실패하고 있는데도 전문가가 얘기하면 수구세력의 반발이라고 무시하며 경직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결국 시장에서의 게임능력 결여로 시장의 힘에 역공을 당하여 실패하지 않았나 하고 고뇌합니다.
넷째, 국민은 정부· 여당이 과거에만 매달려 미래를 등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즉, 국민은 갈 길이 멀고 앞길이 바쁜데도 정부· 여당은 과거에 연연하며 파헤치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며 사사건건 걸고 넘어가는 것에 국민들은 짜증이 났고 점점 정부· 여당을 귀찮은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짚고 정리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짧고 집약적이어야 했습니다.
다섯째, 국민에게 신망을 주지 못하는 언행이 계속되어왔다는 점입니다.
최고의사결정기구가 조직 내외의 다양한 목소리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했고,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외부로 여과없이 노출됐습니다. 당내에서는 침묵하는 다수보다도, 선명하다고 자칭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소수가 당내 의사결정과정을 왜곡하고 장악했습니다. 여기에 대통령의 언행이 보태져 국민이 더욱 등을 돌린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국민의 의식 수준에 대해 심각한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국민은 실제 저만큼 가 있기 때문에, 국민과 우리 당의 의견이 차이가 났던 것인데도, ‘국민은 어리석다, 옳지 않은 판단을 자주 한다. 자기정화능력이 없으므로 가르치고 이끌어야 한다.’는 식으로 오해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가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개혁의 꿈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국민을 개혁대상으로 보고 피로하게 몰아붙인 것입니다.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겸허하게 국민의 말씀을 더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듣지는 않고 오히려 더 말했습니다. 국민들은 시장 근처에 모여 사는데, 정부· 여당은 산 위에서 홀로 고함치며 자기논리를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말은 많이 했는데, 막상 쓸 만한 말은 너무 적었습니다. 또한 말이 많다 보니 그 진정성을 의심받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전술적 냄새가 너무 풍겼고, 결국 민심이 등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III.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 새로운 방향과 틀의 설정 -
개혁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2만불 국민소득, 3만불 국민소득의 Vision을 제시해야 하는 정당으로서, 우리는 방향과 틀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무엇보다 중도시장주의로 나아가야 합니다. 시장에 보다 근접하여 살아가는 중도시장주의로 정치·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합니다.
국민소득이 2만불을 바라보는 지금 국민의 욕구체계는 크고 다양하게 변화하는데, 획일적인 가이드라인만을 제시하는 교조주의적 개혁노선으로 더 이상 통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집단강령보다는 각 개체와 각 부문을 중심으로 하는 자기혁신운동에 맡겨져야 합니다. 그래야 훨씬 더 국민의 가슴을 움직일 수 있고, 성공 가능성도 더 높아지는 것입니다.
특히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시기를 맞이해서 더 이상 색깔 구분의 시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강조합니다. 색깔 자체에 무심한 국민들 앞에서, 색깔이 다른 사람은 모두 적이라는 자세를 계속 취한다면, 즉시 절대다수의 국민이 적이 되고마는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장에 빨리 다가가서 시장을 유연하게 활용하지 않으면, 버스 떠나간 뒤 손을 흔드는 꼴이 됩니다. 바람이 부는데도 돛을 올리기는 커녕 기껏 손으로 노를 저으며 물길을 역류하여 항해하려는 무모함은 이제 그만 합시다.
둘째, 기업을 중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경제정책의 출발점을 가계부문에서 기업부문으로 시급히 전환해야 합니다.
현 경제상황은 구조적으로 취약한 정체국면(stagnation)입니다. 경제 전반에 극도의 무력감이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기업부문에서는 위험회피적이고 상황호전을 기다려 보는(wait and see) 성향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정체가 침체로 발전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고유가, 환율하락, 금리상승 효과가 시차를 두고 반영될 예정이며 내수와 수출이 동시에 침체될 경우 각종 신용보증에 의존하고 있는 중소기업 발 위기가능성을 경계해야 합니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정책의 중점이 지나치게 가계부문에 쏠렸습니다. 은행은 가계대출을 늘리는 데 주력했고, 정부는 가계소비를 늘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가계소득의 원천이 기업인데도 기업을 위축시키고 가계에 자원을 직접 배분하는 모순을 저질렀습니다.
우리 경제가 정체국면을 벗어나려면 기업활동의 역동성 회복을 중심으로 한 정책전환이 시급합니다. 그리고 기업이 유발한 부가가치가 가계에 연결되도록 고리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셋째, 실물부문 경제를 시급히 소통시켜야 합니다.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은 부동산시장, 기업투자, 가계부문 등 실물부문에 막혀있는 부분을 뚫고 소통시키는 것입니다.
부동산거래의 소통, 즉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되도록 다음과 같은 대안을 검토해야 합니다.
중장기 보유 1세대 1주택을 중심으로 1~2년간 양도세를 한시적으로 비과세한다든지, 과세 시가표준이 올라간 만큼 거래세를 낮춘다든지, 개발부담금을 예납제로 하여 미실현된 소득이 나중에 실현될 때 부담금을 정산하여 내도록 보완하고, 보유세의 분납제를 대폭 확대해야 합니다.
기업투자의 소통을 위해서는, 우선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기업의 실물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폐지 또는 완화하는 등 기업활동 활성화방안을 마련하여 추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업투자가 고용과 서비스 부문으로 이어져 소비와 연결되도록 기업 발 경제활성화를 유도해야 합니다.
또한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고 쌓아놓은 현금들은 사모펀드(PEF)를 통해 중소기업 구조조정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PEF법을 개정해서 애초 부작용을 염려해 막아놓은 대기업도 PEF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기업부문의 구조적 문제를 일시에 정리하기보다는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운용의 묘를 기하고, 글로벌 플레이어의 기(氣)를 최대한 살려나가야 합니다. 기업의 에너지절약에 대한 금융·세제 지원을 조건으로 에너지절약 시설투자를 권고하여 이 분야에서 신규투자가 촉발되도록 하는 정책도 필요합니다.
가계부문의 소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민경제를 압박하는 지나친 세금공세를 전면 자제해야 합니다. 감세정책도 실효성에 의문이 있지만 지나친 증세정책은 정체된 경제를 침체로 몰고갈 가능성 큽니다. 국내총소득(GDI)이 감소되어 가계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가계지출을 크게 증가시키는 세금 및 비조세 부담 증가가 가계수지를 크게 압박하고 있으므로 이를 완화하는 정책을 발굴해야 합니다.
넷째, 경제정책의 신호체계를 재정비해야 합니다.
경제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하여 시장불안을 잠재우려면 신호체계의 재정비와 함께 책임있는 당국자의 일사분란한 경제운용이 중요합니다.
우선 청와대의 지침에서 벗어나 경제부총리를 사령탑으로 한 경제정책의 신호체계를 시급히 정비해야 합니다. 더불어 각종 위원회를 정비하고 경제부처가 권한의 범위 내에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합니다.
다섯째, 새로운 target customer를 확보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전통적 지지세력이 있다는 가설에 얽매여, 쉽게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환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조건 없이 지지하고 애정을 보내는 세력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특히 20대, 30대, 40대의 이동이 두드러집니다. 왜냐하면 시장만이 생존을 가능케하는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시장에서 동떨어진 산 위에서 고함만 칠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산해서 시장을 통해 개혁을 추진해나가며 새로운 지지세력을 확보해 나가야 합니다.
여섯째, 정치· 정책 프로세스를 바꾸어야 합니다.
현재 정치· 정책 프로세스는 아주 경색되어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소리는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교조주의적 당론에 함몰되어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깊은 고뇌와 연구의 토대 없이 즉흥적으로 무책임하게 표현된 소리들이 당론이 됩니다. 능력과 리더십의 부족으로 인해 논리로 설득이 안되니까 당론으로 얽어맵니다. 반발이 있으면 청와대 압력이라고 핑계댄 후 치열한 싸움 끝에 강행처리합니다.
그러다 보니 따라야 한다는 신성감은 없고 저항감만 커져서 총체적으로 실패하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여당이 밀어붙여 통과시킨 법률들을 보십시오.
세금을 올리는 조세법개정안을 의원발의로 제출하고 이를 당론으로 밀어붙인 후에 강행처리했던 것이 정치· 정책 프로세스의 대표적인 실패사례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정부발의 후 국회에서 수정해가는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종전과 같은 강행처리는 혁명기나 국가위기상황, 혹은 국민소득 5천불 시대나 통하던 방식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너무나 합의에 게을렀습니다. 이제부터는 합의될 때까지 끝없이 노력하도록 바뀌어야 합니다. 몇몇 사람이 모여서 쑥덕거리는 당정회의같은 곳에서 국가 전체를 뒤집을 수 있는 정책이 결정되는 것은 너무나 부적절한 정치· 정책 프로세스입니다.
의사결정과정이 비민주적인데다가 전문가의 소리마저 듣지 않고 있습니다. 당 지도부에 소위 전문가 그룹이 전혀 진입하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사안별로 전문가와 연석회의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문가들이 어쩌다 뭐라고 한 마디 하면 반개혁적이라고 몰아붙이더니 결과가 이게 뭡니까?
몇 명이서 정책안을 만들었다면 표결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전체 의원의 의견을 수렴하는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당내 논의과정을 볼 때 참 안타깝습니다.
국민들은 지방선거 참패 이후 지난 며칠 동안 우리 당의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실망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과 틀을 바꾸는 것인데 인선문제만 가지고 논쟁하지 않았습니까? 말만 무성한 채 조속히 결론을 내리지도 못하면서 무기력한 모습만 또다시 드러냈습니다. 거론된 인사들은 공연히 언론에 노출되어 시달리기만 했습니다. 사람만 바꾼다고 당이 재건되고 민심이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정 필요하다면 보다 유능하고 걸출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야 합니다.
당 중진들이 모여서 그동안 수없이 안을 만들었지만 실패도 많았습니다. 이번 선거 결과가 그것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안을 내놓았다면 억지로 관철시키려 하지 말고 표결을 합시다. 그렇게 결정해야 권위가 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누구든지 당의 지도적 위치에 서게 되면 국민의 요구, 즉 시장주의에 충실히 따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면 아예 맡지 말아야 합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자기 고집이나 소수의 목소리대로만 당을 이끌려고 한다면,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IV. 마치며
큰 틀에서 보면, 국민은 항상 옳았습니다.
과거에도 옳았고, 탄핵파동 때도 옳았고,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옳았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도 옳을 것입니다.
때문에 국민에게 귀를 기울이며 겸손하게 다가가야 하는데, 종래 그러지 못했습니다.
국민 대다수의 기분을 우울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반어법적 언행과 치고 빠지는 정치전술 때문에 진정성을 의심받으면서도 아직도 구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 우리 당과 정부가 큰 위기에 봉착해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기는 관리할 수 있습니다.
위기를 잘 관리하면 이것을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은, 위기가 ‘우연히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위기는 바로 ‘바꿀 수 있는 기회’라는 뜻입니다.
즉, 위기는 부족했던 것과 찌꺼기를 과감히 털어내고 문제를 새로 살펴보고 상황을 다시 정리하여 재탄생을 할 수 있는 기점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저수지에 물이 말랐다면 농사짓는 데는 위기이지만, 밑바닥에 쌓인 쓰레기찌꺼기를 청소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라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저는 국가적인 위기 관리에 깊숙이 참여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확신을 갖고 말씀드리는데,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네 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겁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겁에 질리면 아무 것도 안되는 법입니다. 위기에서 가장 큰 적은 스스로 위축되는 것입니다.
둘째,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기일수록 과감한 결단이 요구됩니다. 특히 완전히 바닥에서 시작하여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에서는, 절대 정치공학적· 선거공학적 전술에 기대지 말아야 하며, 무엇보다도 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만들어나갈지에 대해 전략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추진하고 있는 개혁과제들 중에 잘못된 점은 없는지 전면 재검토해야 합니다.
셋째, 모두 모아 합치는 지혜와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97년 IMF 외환위기 때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보여줬던 그 모습,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한데 힘과 뜻을 모았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빠른 시간 내에 탈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소, 경륜의 유무, 보-혁을 모두 융해시켜 아우르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넷째, 겸손하고 겸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그만 성과에 결코 자만해서는 안되며, 끝까지 겸허한 자세로 신중하고 진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시장주의에 다가가도록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노력하면 국민의 신뢰가 다시 회복될 것이며, 이렇게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나갈 때 우리는 반드시 이깁니다. 즉, 내년 대선에서는 국민의 심판의 화살이 한나라당을 향할 것입니다. 승리에 도취되어 교만해진 자, 망할 것이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자, 망할 것이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자, 승리할 것입니다. 이러한 법칙은 순리이면서 역사의 순환입니다.
짧지 않은 시간,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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