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12 19:11
수정 : 2006.07.12 22:09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끝났지만 ‘박근혜-이명박’ 대리전의 후유증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양쪽 모두 폭풍 뒤의 고요 속으로 몸을 감췄지만 속내는 차이가 느껴진다. 승자는 ‘대세론’을 즐기며 표정관리에 들어갔고, 패자는 애써 불편한 심기를 감추며 반전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불패 박풍’ 이제부턴 ‘속도조절’
박근혜 위력 실감…때이른 대세론 솔솔
전대 후유증 치유·의정활동 집중할 듯
‘박풍’이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휘몰아치고 지나간 12일.
박근혜 전 대표는 여전히 고요했다. 전날 개표 결과도 보지 않은 채 전당대회장을 떠났던 그는, 이날 내내 서울 삼성동 자택에 머물렀다. 한 측근은 “전당대회 결과에 대해 어떤 말씀도 없었다”며 “예정된 외부행사나 약속도 없다”고 말했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내비쳤던 ‘박심’을 다시 거둬들이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조용한 박 전 대표와는 달리 당 안팎에선 박풍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박풍은 초대형 태풍 수준”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부산의 한 의원은 “높은 당 기여도와 대중적 인기를 지닌 박 전 대표의 힘이 다시 과시됐다”며 “이번 전당대회에서 적어도 10~15% 가량의 대의원을 움직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다른 한 재선의원도 “전당대회를 통해 박 전 대표가 움직이면 어떤 상대세력도 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이미 ‘대세’가 아니냐는 다소 때이른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 의원은 “센 곳으로 쏠리는 성향이 강한 한나라당의 속성상 전당대회에 이어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관성의 법칙’이 작용할 것”이라며 “당내에서 박 전 대표 대세론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더 이상의 세를 드러낼 것 같지는 않다는 전망이 많다. 박심-이심으로 갈라진 당을 통합하는 데 더 무게를 둘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박근혜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은 “전당대회가 과열되면서 박 전 대표의 뜻이 언론 등에 잘못 전달된 것도 많다”며 “조만간 이재오 최고위원 등에게 오해가 풀리도록 양해를 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도 “박 전 대표가 앞으로 당직 개편 등에 개입해 자기사람 심기에 나선다면 소탐대실하는 결과가 올 것”이라며 “현역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통해 국정 운영능력을 키우고 컨텐츠를 채우는 데 치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민심은 내편…차분한 ‘반전준비’
‘민심 등돌린 당심’에 당 개혁 명분쥐어
“본게임은 컨텐츠” 차별화로 승부 걸듯
“나는 소이부답(웃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음)이지 ….”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12일, 전날 치러진 전당대회에 대해 말을 아끼려 했다. 기자들이 아침부터 서울 견지동 서흥빌딩의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웃는 얼굴로 짧은 악수만 건넸을 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신 쉼없이 방문객들을 맞았다.
오후 들어서야 마음이 정리된 듯 몇마디를 꺼냈다. 가까운 국회의원 등과 점심 식사를 하고 난 뒤였다.
그는 “언론에서는 최고위원 5명 중에 4명이 ‘친박’(친 박근혜)이라는데,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강재섭 대표가 당을 잘 이끌기 바란다”고 덕담을 건넸다.
하지만 곧바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대리전’ 논란에 대해 “나는 (전당대회에) 개입하지 않았는데, 저쪽(박근혜 전 대표 진영)에서 ‘이 전 시장이 움직인다’며 자기들이 움직일 명분을 만든 것 같다”고 했다. ‘도로 민정당이 됐다’는 당 안팎의 지적에 대해서도 “그런 우려가 있겠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전 시장 쪽은 차분하게 ‘반전’을 모색하려는 분위기다. ‘친 박근혜’ 인사들이 사실상 지도부를 장악해버린 상황을 홀가분하게 받아들이려는 기류마저 읽힌다.
한 측근은 “여론조사에서 이긴 이재오 후보가 대의원에서 밀려 강재섭 대표에게 졌으니, 민심과 당심이 거꾸로 간 셈”이라며 “당 개혁의 명분을 이 전 시장이 쥐게 됐다”고 말했다. 여론의 ‘역풍’이 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다른 측근 의원은 “박 전 대표 쪽은 전당대회에서 ‘대리전’을 노골화하면서 실체를 드러내 보였다”며 “이 전 시장은 당내에 기반이 없었는데도 상당한 자기 표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시장 쪽은 박 전 대표와의 차별성에 승부를 건다는 구상이다. 한 관계자는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보듯, 대선후보 선택의 기준은 ‘콘텐츠’와 ‘본선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국민들의 관심사인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한 비전을 묵묵히 준비해가면 결국 ‘당심’도 이 전 시장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바람인 것이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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