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정보보호법안 몇달째 국회에서 낮잠 |
사생활 침해 위험을 키우는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개인정보 유출 및 부당이용 사례가 잇따르면서, 개인정보 및 사생활 보호의 총론 구실을 할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이 시급해지고 있다. 하지만 국회에 제출된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안은 행정자치위원회에서 몇 달째 심의조차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전자태그 기술과 센터 네트워크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어느 네트워크로나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유비쿼터스’ 사회는 장밋빛 환상을 갖게 하지만, 개인정보 및 사생활 보호 측면에서 보면 악몽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유비쿼터스 사회가 장밋빛을 갖게 하기 위해 서둘러 마련돼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개인정보보호법”이라고 지적한다. 홍준형 서울대 교수(공법학)는 “개인정보보호법은 유비쿼터스 정보사회의 권리장전”이라며 “더는 머뭇거릴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이미 우리 나라는 개인정보 및 사생활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를 정비하지 않은 채 정보화를 추진해, ‘개똥녀’와 ‘왕따 동영상’의 사례에서 보듯 개인정보 및 사생활 침해 피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런 점을 들어 1990년대 중반부터 개인정보보호기본법 제정을 촉구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2003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에 서둘러 제정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이미 국회에는 이은영 열린우리당 의원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2개의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안이 제출돼 있다. 이 의원 발의안은 열린우리당과 정부의 합의로 마련됐고, 노 의원 발의안은 시민단체쪽 의견을 담은 것이다.
개인정보보호감독기구의 경우, 노 의원은 별도의 독립기구 설치를 제안한 데 비해, 이 의원은 국가인권위원회 밑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두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의원이 감독기구를 총리실 산하에 두는 쪽으로 법안 내용을 수정하면서 이견이 크게 좁혀졌다. 이 의원은 당정의 새 합의에 따라 법안 이름도 ‘개인정보보호기본법’에서 ‘개인정보보호법’으로 바꿨다. 따라서 국회가 두 법안을 묶어 심의하고, 통합해 처리할 때의 걸림돌이 상당부분 사라졌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안은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처리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회 행자위 관계자는 “다들 시급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라며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중요하게 다뤄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와 누리꾼(네티즌)쪽에서는 유비쿼터스 사회에서 개인정보 및 사생활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 관계자도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을 통해 국가적으로 통일된 개인정보 및 사생활 보호 기준이 마련돼야 유비쿼터스 사회로 갈 수 있는데, 국회의원들이 미적거려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재섭 정보통신전문기자 jskim@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