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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23 13:49 수정 : 2005.09.23 18:40

이인영 의원

열린우리당 재야파의 이론가로 꼽히는 이인영 의원이 2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다당제 정계개편론’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유시민 의원의 ‘선거제도 개편과 창조적 분열을 통한 5당체제론’에 대한 비판이다. 바야흐로 여당 안에서 정계개편을 둘러싼 이론투쟁이 본격화하는 조짐이다.

글의 제목은 ‘다당제의 함정-민주화의 퇴행, 그리고 지역주의의 덫’. 이 의원의 글은 정중하고 진지하다. 유시민 의원의 신랄한 독설이나 차가운 냉소는 없으되, 목소리가 사뭇 준엄하다. 이 의원은 말한다. “다당구도는 양당구도가 지닌 민주화 과정의 성과를 후퇴시킬 것이다. 선거제도 개편에 초점을 맞추고, 정계개편의 촉발이라는 상상력의 과잉으로 발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것이 진정성을 일관되게 견지하는 정도(正道)다”라고. <한겨레> 정치부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다음은 이 의원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의 전문이다.


최근 선거구제의 개편논의를 둘러싸고 조심스럽게 다당구도 하의 정치지형의 긍정성에 관해 주목하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이야기하든 도농혼합형선거구제(일정한 규모의 도시는 중선거구로 농촌은 소선거구로 구성되는 선거구제도)에 일률배분식 비례대표제를 이야기하든 일부 인사들의 내면에는 다당구도로의 정치지형 변화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합니다. 독일식과 혼합식 간의 입장 차이를 극명하게 하면서도, 즉 독일식을 해야지 혼합식을 하면 안된다고 얘기하면서도 혹은 그 반대로 이야기하면서도 돌아서면 다당구도 정치지형에 관해서는 이해를 같이하는 경우도 있어 보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당신은 다당제 정치지형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의 질문에 처합니다. 이른바 선거제도의 개편이 정계개편을 촉발한다면 이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뭐냐는 질문에 직면하면 솔직히 난감합니다. 지역구도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선거제도의 변화를 통해 결실을 맺고 싶었던 순수한 취지나 동기에 비추어서도 그렇고, 더욱이 같은 민주화운동의 선후배 관계이거나 동료였던 사이에서 다당제 정치지형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것은 내키는 일이 아닐 뿐만아니라 썩 유쾌한 일은 당연히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어떤 견해를 밝히면 또 무슨무슨파 혹은 그룹의 견해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솔직히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제가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단히 일관된 길을 가다보면 누구의 입장이 아닌 제 자신의 입장으로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요. 그래서 오늘도 제 입장을 정리해 봅니다.

아마 다당제를 주장하시는 분들의 입장은 현재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중심의 양당구조가 지역주의의 산물이거나 지역구도를 고착시키는 정당지형이므로, 지역구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지금의 양당구도를 깨고 다당제 구도로 가야한다는 취지인 것 같습니다. 선거제도를 바꾸면 특히 독일식이든 혼합식이든 자연스럽게 여러 개의 정당이 출현할 수 밖에 없고, 이는 지역에 상관없이 개혁정당과 보수정당 등의 이념정당의 출현을 가능하게 해서 장차 지역주의가 크게 완화되거나 소멸할 것이라는 낙관에서 기인합니다. 솔직히 현 시기 정치발전의 중대과제, 핵심과제로 지역주의를 크게 보는 것에 대한 본질적 비관에 비하면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지역구도를 크게 완화시킬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정말 지나친 낙관, 낭만적 기대입니다.

상대방의 견해에 비판과 평가를 가한다는 것이 조심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저는 이러한 견해들은 세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다당구조는 양당구조가 지닌 민주화 과정의 성과를 후퇴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양당구도는, 정확히 표현해서 양강구도는 민주화 개혁투쟁의 성과입니다. 이 점을 사상하고 지역주의 화신으로 지금의 양강구도만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상대방은 강고한데 우리 자신은 약화시키는 오류로 귀결할 수 있습니다.

불과 10년 전까지 한국정치는 민정당 일당독재와 그 후신인 민자당 일당독재에 의해 지배되었습니다. 우리는 민자당으로의 합당에 반대해서 야권통합을 실현하고 이를 통해서 겨우 1/3의 개헌저지선을 확보한 대안정당, 저항정당의 시절을 보내기도 했고, 개헌저지선에도 못미쳐 자민련과 공조해서 정권교체를 이루고 공동정부를 구성했던 시절도 경험했습니다. 이는 꼬마민주당과 국민회의의 분열, 그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야권통합이 있기 직전 민자당 합당을 거부했던 통일민주당의 잔존세력과 평민당(그 후신인 신민연까지 포함) 시절의 핵심적 문제의식이기도 했습니다. 20년 전 우리는 민정당 일당독재와 들러리 야당의 시절도 경험했고, 이른바 2.12 돌풍으로 신민당과 통일민주당을 거치면서 대항정당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돌이켜보면 지난 10여년의 과정은 단순히 지역구도가 고착되어온 과정이 아니라 민주화 개혁세력이 성장해 온 과정이기도 합니다. 88년 여소야대, 91년 민자당 합당반대, 92년 여소야대, 97년 수평적 정권교체, 2002년 정권재창출, 04년 국회과반수 의석의 확보과정은 지속적인 민주개혁세력의 성장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지금 우리가 과반수 정당을 경험하고 과반에 가까운 다수여당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 뿌리는 아직 불안전합니다.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을 거치면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반동적 퇴행적 정치세력들에 대한 국민들의 공분과 심판이 만들어낸 결과이지 민주개혁세력의 힘이 강고하게 형성되어 준비된 능력으로 얻은 성과라고 보기는 솔직히 아직 어렵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강고한 기득권동맹의 정당 앞에서 중도개혁세력과 합리적 진보세력이 연합해서 주도하는 우리당이 더욱 단결하고 힘을 확대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지, 우리가 우리 스스로 우리의 힘을 쪼개어 나누어도 될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도 기득권동맹의 힘은 민주개혁세력의 연합된 힘에 비하면 좀 더 우위에 서 있으며, 우리는 아주 많이 후한 점수를 주어도 절대 반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을 합쳐도 그럴 것 같습니다.

둘째로 다당구조는 양강구도 하의 지역주의 보다 더 극심한 지역주의를 야기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당이 내연한 이념적 노선상의 차이로 분화하고 이것에 상응하는 한나라당의 분화가 생긴다면 그것의 결과는 뻔합니다. 개혁과 보수의 스펙트럼에 맞는 정당들의 분별 정립 보다는 소지역주의 정당구조를 양산할 가능성이 훨씬 농후하다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뭐하러 다당구도로 가느냐는 반문에 바로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당이 분화하면 민주당을 중심으로한 호남정당, 중부권신당, 영남을 기반으로한 정당, 수도권 중심의 개혁정당 등이 출현할텐데 이는 평민당, 신민주공화당, 민정당, 통일민주당, 혹은 민자당 그리고 한겨레민주당 혹은 개혁당, 민중의 당 등에서 이미 경험했던 지형입니다. 누구 표현대로 호남1, 호남2, 영남1, 영남2, 중부, 개혁1, 진보1 이런 식으로 정당의 다당구도를 형성한다면 이는 명백히 소지역주의 정당구조의 양산이고 아주 퇴행적인 결과입니다. 지역중소정당의 난립은 정책과 노선에 근거한 연합과 제휴 보다는 고착된 지역주의를 매개로 권력나눠먹기로 전락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다당구도가 지역주의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주의에 기생하는 세력들을 난립시켜 지역주의를 오히려 심화시킬 우려가 높다면 그런 다당구도를 촉발시킬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한편 보기에 따라서는 아주 미흡하다 보일 수 있는 것이지만, 분명 10년 전 보다 확실히 엷어지기 시작한 지역주의 벽을 다시 두텁게 만드는 것일 수 있습니다. 97년의 정권교체와 2002년의 정권재창출은 다릅니다. 지역구도 획일적 규정력과 달리 세대적 계층적 개혁적 이념층들의 적극적 정치행위가 일구어낸 2002년의 변화, 이 점을 간과하면 그것은 노풍과 돼지저금통에서 시작된 우리당의 뿌리를 반절은 부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점이 1997년의 단순 반복으로 2002년 선거를 '호남+충청의 구도'에 의존해서 치루려했던, 정권에 도전하려했던 이인제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기득권적 지역연합+문화연합'에 의존했던 정몽준 후보와의 차이입니다. 노무현 후보의 승리는 지역에 대한 역지역주의의 승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던 이유이고 근거이기도 합니다.

셋째 선거제도의 변화는 반드시 다당구도로 나아가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선거제도의 변화는 '큰 민주평화개혁정당 대 기득권수구보수정당'의 구도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선거제도의 변화가 다당구도를 초래할 것이라는 성급한 단정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지키고 확대해온 민주대연합, 개혁대연합의 정신을 훼손하고 원칙과 궤도를 상실하게 하고 혼란을 자초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사회당이 연합해서 집권했던 시절도 중선거구제하에서지만 따지고 보면 자민당과의 양강구도는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독일도 기본적으로는 양강구도가 유지되면서 소수정당이 결합되어 연정을 구성했습니다. 대체로 중선거구제이건 소선거구제이건 여러 나라에서 양강정치구도를 중심으로 소수정당이 결합하는 정치지형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양강정당구도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양강중심의 정당구도가 그대로 지속될 가능성이 비교적 균등하게 다당구도로 분화될 가능성 보다는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정치의, 민주개혁과정의 탄성이 양강 중심의 정당구도를 더 선호하게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인위적으로 균등한 배분을 한다해도 그래서 잘 안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명분에서 밀리고 정통성에서도 밀릴 겁니다.

따라서 지금 싯점 '선거제도의 변화가 정계개편을 촉발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당구도이다' 이렇게 단정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은 견해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다당구도가 반드시 지역구도를 해체하고 소멸시키는 쪽으로 기여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향후의 일은 향후의 일로 그냥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불확실한 미래의 예측은 상상력의 과잉을 초래하고 이것은 선거제도의 개편을 통한 지역구도의 완화 또는 해결이라는 당면한 목표치를 흐리게 할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체성의 추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상황이 이전과 다르고,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의 사정이 다르므로 비교적 균일한 다당구조가 한국사회에서 지역주의를 넘어 새로운 정치발전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현 시기 선거제도의 개편논의는 지역구도를 해소하는 데 집중하고 정계개편을 목적으로 추진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즉 지역구도를 완화하는 선거제도의 개편에 촛점을 맞추고 정계개편의 촉발이라는 상상력의 과잉으로 발전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지역구도를 극복하기 위한 연정논의, 선거제도 개편이라는 진정성, 취지의 순수성을 일관되게 견지하는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 이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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