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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 / 한겨레 이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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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국회 윤리특위 개혁이 기만적인 이유
‘대구 국감 술자리 파문’ 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위원장 김원웅)가 또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국회 윤리특위에 대해 ‘허수아비’, ‘솜방망이’,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이 터져나온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구 술자리 파문은 국감 뒤 피감기관과 가진 부적절한 술자리에다 술자리 폭언으로 국회의원들의 윤리의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사건 당사자들의 진술이 엇갈려 의혹이 증폭되고 있지만, 국회가 스스로 자정 능력이 있다면 검찰의 수사와 언론보도에 앞서 윤리특위를 통해 국민들 앞에 진상을 밝혔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국회는 ‘제식구 감싸기’와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수단으로 윤리특위를 써먹었을 따름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한발 더 나아가 앞에선 윤리특위 개혁을 외치고, 뒤로는 ‘대구 술자리’ 덮기를 위한 공동전선을 구축하며, 사이좋은 ‘한-우리’ 연정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술자리 추태 의원들 윤리특위 회부했다가 철회, 장난하나?한나라당 “다행스러운 일” 화답 ‘한-우리’ 공동전선 술자리 파문이후 국회 윤리특위는 언론에 단골로 오르내렸다. 열린우리당은 지난달 23일 주성영 의원이 술자리에서 성적 폭언을 했다는 보도가 터지자마자 “윤리특위에 제소하겠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결국 우리당은 사건이 터진 뒤 10여일이 지난 2일 김부겸 원내수석부대표 등 29명의 이름으로 “술자리 폭언 파문은 열린우리당의 음모”라고 주장한 주성영 의원을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그러나 우리당은 주 의원과 술자리에 합석한 당 소속 의원인 최용규, 선병렬, 이원영, 정성호 의원 등 4명은 윤리위 제소에서 빼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이런 비난을 의식했는지, 우리당 소속 윤리특위 위원 5명(이상민·이기우·정봉주·한광원·한병도)이 5일 대구 술자리 당사자인 주성영 의원을 비롯해 한나라당 주호영, 김성조 의원과 함께 당 소속 의원 4명도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제소된 의원들이 국정감사 기간에 피감기관으로부터 향응ㆍ접대를 받아 국회의원의 품위를 훼손했다는 것이고, 주성영 의원에 대해서는 욕설 및 추태 논란에 관한 안건을 추가했다.
17대 국회도 ‘빛나는 전통’ 역시 윤리특위
우리당 자당의원 제소했다 지도부 호통에 ‘철회’ 그러나 우리당 의원들의 자당 의원 윤리위 제소는 ‘쇼’로 귀결됐다. 당 지도부의 압력으로 윤리위 제소가 하루 만에 철회된 것이다. 오영식 우리당 공보부대표는 6일 “우리당 법사위 의원들은 당시 그 술자리에 주역이거나 문제의 발언을 한 당사자가 아니었다”며 “우리당 의원들까지 윤리위에 제소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처사라고 판단해서, 이의 철회를 이상민 의원에게 강력하고도 정중하게 요구했다”고 밝혔다. 결국, 이상민 의원을 뺀 4명의 의원이 제소를 스스로 철회할 뜻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정세균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윤리위 위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철회를 요구했다고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한나라당도 ‘쇼’에 동참했다. <오마이뉴스> 6일 보도를 보면 한나라당 나경원 공보부대표는 “개인적인 친분에 의한 사적인 술자리였으니 윤리특위에 제소까지 될 사안은 아니다”며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민노당 “술자리 추태 눈감아 주겠다는 것”
참여연대 “이중적인 태도로 국민을 우롱” 두 당의 화기애애한 공동전선에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는 즉각 비판에 나섰다. 민주노동당 김성희 원내 대변인은 6일 오후 성명을 내어 “여당 윤리특위 위원들의 원칙에 입각한 판단을 당 지도부가 철회시키도록 강요하는 구태정치”라며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술자리 추태를 사실상 눈감아 주는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참여연대도 7일 성명을 통해 “국회 다수당의 원내대표라는 지위를 이용해 국회윤리특위의 윤리심사 권한까지 좌지우지하겠다는 발상”이라며 “당리당략을 앞세워 국회 공식기구인 윤리특위의 권위를 철저히 훼손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참여연대는 “정치적, 정책적 영역에서 사사건건 대립해왔던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윤리위 제소 철회 요구’에 환영 논평을 내고 손발을 맞추는 모습은 황당하기 그지없다”며 “뒤에서는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이나 책임추궁을 피해가기 위해 부적절한 방법을 동원해 압력을 행사하면서, 앞에서는 윤리특위를 강화하겠다고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우리 “윤리특위 개혁” 입버릇 처럼 외쳐놓고… 참여연대의 지적처럼 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뒤로는 대구 술자리 사건의 은폐를 위해 공동전선을 구축해놓고 앞으로는 윤리특위를 개혁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영식 부대표는 “우리당은 윤리특위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그간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바와 같이 도덕성과 경륜을 겸비한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국민참여윤리위원회 구성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맹형규 정책위의장도 6일 “국회의원에 대한 외부 통제수단을 마련하기 위해 국회 윤리특위 내에 별도의 윤리조사기관으로 윤리감사원 신설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야 모두 국회 윤리특위를 개혁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의 참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당의 주장은 새로울 게 전혀 없다. 국회개혁특위가 지난 6월16일 법사위에 넘긴 국회개혁안을 보면 윤리특위의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외부인으로 구성한 윤리심의위원회를 자문기구로 신설하고, 윤리특위에 위반사실을 통보하고 징계를 요구할 수 있도록 제안했다. 오 부대표와 맹 의장의 제안은 국회개혁특위의 6월 제안을 다시 되풀이한 것에 불과하다. 윤리특위는 지난 4월26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윤리선언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당시 윤리위 선언문에는 △당리당략보다 국가안녕과 국민행복 최우선시 △회의 출석 엄수 △품위있는 언행 실천 △비정상적 의사진행 배격 △부당한 이득 도모나 영향력 행사 지양 등 5개항으로 되어 있다. 김원웅 윤리특위 위원장은 2004년 7월8일 첫 회의에서 “17대 국회가 어느 때보다 높은 도덕과 윤리성을 요구하고 있다”며 “잠자는 윤리특위를 깨워 국민들의 정치개혁 열망을 담아내기를 바란다”고 개혁을 역설했다. 본회의 징계의결 한 건 없고, ‘솜방망이’ 처분도 여전
주성영 “차라리 나를 제명하라” 조롱까지, 권위 되려 약화 이런 윤리특위 개혁과 윤리선언문 등 정치권의 자정선언은 공염불에 불과했다. 17대 국회 들어 술자리 폭행이나 비리사건, 본회의 의사진행 방해 등 국회의원들의 비윤리적인 행위는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회의원들이 윤리적인 문제로 동료 의원의 징계를 결정한 경우는 없었다. 물론, 윤리특위는 지난 91년 부활된 뒤 17대 국회에서 윤리특위 사상 처음으로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과 열린우리당 김한길 의원에게 윤리위반 결정을 내리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이기는 했다. 김태환 의원은 지난해 9월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서 60대 경비원을 폭행한 것이 문제가 되었고, 김한길 의원은 2000년 3월 만주당 총선기획단장을 지내면서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한테서 1억원의 불법자금을 받아 여론조사에 사용한 것이 국회 윤리강령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리특위가 두 의원에 가한 제재는 윤리강령 위반사실을 통고하는데 그쳐 ‘솜방방이’ 처분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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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술자리 폭언 논란에 휩싸인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9월25일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진실이 조작됐다”며 자신은 ”야, XX”라고만 했을 뿐, 폭언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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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정쟁 따라 윤리특위 써먹다 뜬금없이 “개혁해야” 주장 권위를 상실한 윤리특위는 여야의 정쟁으로 4달째 회의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 현재, 윤리특위는 지난 6월28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김문수 의원 징계안에 반발해 “형평성이 결여된 당략적인 과잉 징계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윤리위원 사퇴를 선언해 파행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지난 5월 술자리에서 동석한 사람을 폭행해 윤리위에 회부된 우리당 김낙순 의원의 윤리심사안을 비롯해 7건의 징계안과 11건의 윤리심사안이 계류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 술자리 추태의 진실을 파악하고, 의원들의 징계를 윤리특위에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더욱이 부적절한 술자리의 동참자인 주호영, 이원영 의원은 윤리특위 위원이다. 윤리특위와 소속 의원들의 징계를 놓고 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입맛에 따라 정쟁과 연대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윤리특위를 놓고 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뜬금없이 개혁을 주장하는 것이 기만적인 이유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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