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01 20:30
수정 : 2005.12.01 20:30
정치적 흥정거리로 여겨…10년째 시한 어겨
“이미 물건너 갔죠. 시한 내에 국회를 통과할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나요?” 1일 기획예산처 한 간부가 내년 예산안 국회 통과 시한을 두고 한 말이다. 헌법 제 54조에는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정확하게는 12월2일이 헌법상 규정된 예산안 처리 시한이다. 하지만 이제 누구도 이런 시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예산안이 처음으로 법정시한을 넘겨 통과된 때는 노태우 정부 2년째인 지난 1989년이다. 그 뒤 대통령 선거로 정기국회를 앞당겨 끝냈던 해를 제외하면, 예산안이 시한 내에 처리된 경우는 94, 95년 두 해뿐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에는 해마다 시한을 지키지 못했고, 노무현 정부 첫해인 2003년에는 12월30일까지 늦춰졌다. 급기야 지난 해에는 12월31일 밤 11시40분이 돼서야 아슬아슬하게 국회를 통과했다. ‘헌법 파괴’가 점점 심해지면서 관행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런 행태는 올해도 마찬가지다. 이번 주초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를 시작하면서 여야는 회의 일정을 아예 2일까지 잡았다. 애초부터 예산안을 2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계획이 없었던 셈이다. 정부·여당은 일단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는 예산안 처리를 마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이처럼 예산이 법정 시한을 넘겨 통과되는 것은 예산안에 대한 심의 기간 부족 뿐 아니라 예산안을 정치적 흥정거리로 삼는 야당의 전략 탓도 크다. 지난해에는 예산안과 4대입법 처리가 연계됐었고, 올해도 야당이 예산안 처리(예산 대규모 삭감)를 부동산대책관련법과 연계시키려 하고 있다.
예산안이 법정 시한 내에 통과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부작용이 많이 발생한다. 우선 중앙부처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등 정부 예산이 들어가는 모든 기관의 예산 집행이 미뤄지게 된다. 국회 의결이 늦어지면 해당기관들은 시간에 ?i겨 충분한 사전준비 없이 예산을 수립·집행하게 되고, 이는 곧 예산의 비효율적 운용으로 이어진다.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이 최근 이례적으로 국회의원 299명 모두에게 이메일을 보내 예산안 시한 내 처리를 호소했다. 하지만 반응은 냉랭했다. ‘노력해 보자’라는 답신을 보낸 의원은 그 중 겨우 1명이었다.
한편, 김영춘 열린우리당 예결위 간사는 “한나라당이 감액을 요구하면서 건건이 토론을 요구하며 일종의 필리버스터를 한다”며 지연 책임을 야당에 넘겼다. 그러나 김성조 한나라당 예결위 간사는 “예산안에 관해 충분히 논의하자는 뜻에서 2일까지 소위를 하기로 했다”며 “어차피 정기국회 끝까지 예산안을 처리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석구 선임기자, 성연철 기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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