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5년 길다” → “개헌론 아니다”
한나라 “시기적으로 부적절”
노무현 대통령은 26일 “임기 5년이 긴 것 같다. 대통령 임기 중간에 선거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자신의 발언이 ‘개헌론’으로 연결되자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노 대통령은 이날 북악산 정상에서 ‘권력구조’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가, 내려오는 길에 한 비서관으로부터 “개헌하자는 뜻으로 오해될 우려가 있다”는 건의를 받자 기자들에게 제법 긴 해명을 내놓았다.
노 대통령은 “개헌 문제에 대해서는 옛날에 의견이 있었지만, 정치적 상황으로 봐서 이미 대통령의 영역에서 벗어난 일인 것 같다”며 “여러 정치 상황으로 볼 때 대통령인 내가 개헌 문제를 끄집어내 쟁점화하고 그것을 추진해 나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유력 대선 후보들과 각 당의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물러나는 대통령이 개헌의 주체로 나설 수 없다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정서적 배경을 깔고 나왔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취임 초의 거창한 포부와는 달리, 3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또 선거 등에 발목이 잡혀 남은 임기마저도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점을 표현한 것으로 들린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개헌 문제에 대해 ‘남의 집 불구경 하듯’ 팔짱만 끼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노 대통령은 “앞으로 정치권에서 또는 시민사회에서 문제가 제기돼서 그것이 사회적 공론으로 되면 저도 나름대로 부분 부분 제시할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의견 제시’를 놓고,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서는 미묘한 온도 차이가 존재한다. 한쪽은 “정치권이 개헌에 대한 합의를 이루기 어려운 만큼, ‘차기’에서 자유로운 현직 대통령이 4년 중임제든 내각제든 현재 5년 단임제의 폐해를 고치는 데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적극 개입론’을 주장한다.
이에 반해 다른 쪽에서는 “권력구조에 대해 얘기하면 불필요한 소모전에 말려들 수 있으므로,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구제 개편 등 한정적인 부분만 의견을 내야 한다”는 ‘제한적 개입론’을 제시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이날 한 말로만 보면, 그 자신은 후자 쪽의 의견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 대통령도 현재의 단임제 개선 필요성에는 절대 공감하며, 그 방향에 대해선 내각제 쪽을 선호하는 것 같다는 게 한 여권 인사의 전언이다.
한나라당은 이날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사실상 조기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간주하고 “시기적으로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이정현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은 개헌이 대통령의 권한이 아니라면서도 개헌 논의에 불을 붙이는 이중 어법을 구사하고 있다”며 “개헌은 시기와 내용 모두 반드시 국민적 요청과 합의를 통해 제기되어야 하며, 적어도 지금 논의할 시점은 전혀 아니다”고 못을 박았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