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총리 인선 계기 스타일 변화 감지돼
정치권 대립각보다 대화정치로 정책전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에 주목할 만한 변화를 느끼게 하는 언행이 잇따르면서 임기 후반기 국정운영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노 대통령이 아프리카 순방에서 귀국한 직후 이해찬(李海瓚) 전 총리의 사표수리를 기점으로 여야 정치권을 대하는 자세에서부터 이전과는 완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의견을 수용하는 형식과 절차를 밟아 노 대통령이 이 전 총리를 전격 교체한 것은 단적인 예.
민심의 흐름을 중시하는 듯한 이런 태도는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사실관계를 우선시해온 노 대통령 특유의 인사스타일과 과거 유사 사례에 비춰보면 `파격'에 가깝다.
특히 17일 현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이뤄진 여야 원내대표단과의 만찬 간담회는 앞으로 국정운영 방식과 대야(對野) 관계 변화의 신호탄이란 관측을 낳을 만큼, 노 대통령의 자세 변화가 두드러졌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다.
청와대 회동에 정치적 무게가 실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노 대통령이 여와 야에 분명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 때문이다.
메시지 전달의 핵심고리는 총리인선 기준이다. 후임 총리 인선을 앞두고 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야당의 의견을 수렴하는 모양새를 갖췄다는 점은 총리지명을 둘러싼 불필요한 정치공방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중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는 지적이다.
올초 1.2 개각 때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의 심각한 반발과 후유증을 무릅쓰고 유시민(柳時敏) 의원의 복지부 장관 입각을 관철시킨 것과는 정반대의 양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노 대통령이 차기 총리의 인선기준을 `정치에서의 중립, 정책에서의 코드'라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제시한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먼저 "야당 마음에 쏙 드는 총리를 지명하겠다"는 언급은 정치인 기용으로 인해 자칫 정부의 지방선거 중립의지가 야당에 의해 훼손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뜻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는 비정치인 출신 총리기용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여당인 우리당에 대한 일종의 `배려차원'일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우리당은 지방선거전 총리지명으로 인해 `인준정국'이 조성되면 야당의 대대적인 공세가 펼쳐질 것을 우려해온만큼 야당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카드를 제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여당의 입장을 거드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노 대통령은 결국 5.31 지방선거와 향후 대선정국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나갈테니 임기후반기 최대 정책과제인 사회 양극화 해소 등 중.장기적 미래과제를 마음에 맞는 총리와 함께 일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탈당문제에 대한 노 대통령의 입장정리도 주목할만하다. 노 대통령은 초당적 국정운영을 위한 명분으로 우리당 당적을 이탈해야 한다는 일부 야당의 요구에 대해 부정적 의사를 밝혀 당적유지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여당의 지방선거 패배를 전제로 노 대통령이 지방선거 이후 `특단의 카드'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란 의구심을 품어왔으며, 여당은 대통령 탈당에 따른 여권의 분화를 은근히 걱정해온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상태에서 노 대통령이 직접 "당적을 버렸을 경우 배반자로 몰리는 부담도 있다"며 탈당 불가의사를 표명함으로써 노 대통령의 당적 문제와 관련된 정국의 불안요인이 상당부분 그 논리적 근거를 잃게 된 것이다. 여야 입장에서 본다면 대통령의 당적유지를 `상수'로 놓고 `예측가능한 정치'를 할 수 있는 만큼 대통령이 희망하는 국정운영에 대한 협력을 제공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셈이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노 대통령이 또 다른 형태의 `연정' 실험에 나선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노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하게 된 근본적 문제의식의 출발점이 대결적 정치문화의 극복에 있었다는 점에서 남은 임기동안 정치공학적 정당연합이 아닌, 사안별로 여야가 이견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정치 선진화를 모색하고 나섰다는 얘기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임기 후반기인 만큼 이제는 관리하고 정리하는 방향이 아니겠느냐"며 "앞으로 입법이 필요한 경우가 있으면 야당에 협조를 요청하는 그런 콘셉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런 `변화'가 `이해찬 낙마'라는 예기치 않은 사태를 맞아 일시적인 전략수정을 한 것인지, 아니면 국정운영의 구상과 틀을 완전히 바꾼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결국 노 대통령의 정치스타일 변화 여부에 대한 판정을 내리는 것은 지방선거 결과에 따른 현실적인 정국상황을 `대입'할 수 있는 시점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이 현시점에서는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 듯한 분위기이다. 김재현 기자 jahn@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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