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10 19:20
수정 : 2006.05.1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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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아제르바이잔 공식 방문 첫날인 10일 오후(현지시각) 수도 바쿠억 헤이다르 알리예프 국제공항에 도착해 라시자데 총리(왼쪽)의 영접을 받고 있다. 바쿠/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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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통한 돌파구’ 중대시기 판단
북 요구 “3대장벽 해소” 적극 검토 시사
노 대통령 ‘북에 양보’ 발언 짚어보니
노무현 대통령이 말을 바꿨다. 북핵 해결과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노 대통령의 판단은 굳이 비유하자면 ‘출구론’ 쪽이었다. ‘핵문제가 악화돼 있는데 북이 정상회담을 받겠는가’라는 현실인식이다. 반면, 9일 몽골 동포간담회에서 한 발언은 남북 정상회담을 핵문제 해결의 ‘입구’ 쪽에 두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당국자는 “전에 없던 것을 새롭게 얘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대해 기억에 남을 만한 언급을 최근 거의 하지 않았다. 지난 1월18일 백범기념관에서 한 새해연설과 뒤이은 25일의 기자회견에서도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남북관계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다만, 지난해 1월 노 대통령은 새해회견에서 “물건도 자꾸 사자고 하면 값이 올라가는데, 협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게 분위기만 띄우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한 적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흥정할 때’가 됐다는 뜻이다. 그것도 단순한 기대표명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선, 현 상황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지난 3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미래 한반도를 어떤 형태로 가져갈 것인가에 대해 (결정할) 중대한 시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큰 틀에서 남북 정상 간에 담판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 장관은 부연하기를 “남북관계를 통해 북핵 문제를 진전시키고, 종합적인 중장기 전략까지 감안해 남북관계를 해 나갈 때”라고 말했다.
또 하나, 남북 간의 사전 조율 내지 물밑 교감의 측면도 감지된다. 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에 무게를 실어주면서 북의 결단이나 선택을 촉구하는 의미도 있지만, 북의 의중을 읽고 북이 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측면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의 6월 방북은 올해 초부터 남북간 협의 채널을 통해 논의된 것이고, 4월 하순 장관급회담을 거치면서 본격화된 것이다. 북은 지난해 말 장관급회담에 이어 지난 4월 장관급회담에서 이른바 ‘근원적인 문제들’로서 정치·군사·경제 등 3대 장벽의 해소를 요구해 왔다.
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이 ‘근원적인 문제들’에 대한 견해표명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 많다. 노 대통령은 특히 상호불신 제거와 흡수통일 반대의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이는 정상회담에 앞선 기본원칙의 재확인으로도 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그해 3월 사회간접자본 등 대규모 경제지원을 뼈대로 한 ‘베를린 선언’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노 대통령도 ‘조건 없는 제도적·물질적 지원’을 강조했다.
지금의 양상은 꼭 1년 전을 연상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을 협의할 금강산 실무대표 접촉이 열리는 5월16일은, 공교롭게도 지난해 6·15 남쪽 정부대표단의 방북에 합의한 개성 차관급 실무대표 접촉을 연 날이었다. 당시 합의는 6·17 정동영-김정일 면담을 낳고, 6자회담 재개와 남북관계의 전면복원 및 협력확대로 이어졌다.
문제는 남북관계 복원의 가능성과 달리, 6자회담 표류로 북-미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불균형’에 있다. 스티븐 보즈워스 전 주한 미국대사의 지적처럼 미국은 ‘한국이 돈지갑을 벌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이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에 상응해 정부가 공약한 ‘과감한 지원’에 제동을 걸려고 할 것인지는 관심의 대상이다. 북한으로서는 미·일의 압박 강화와 포위 속에서 남쪽과의 담판은 유용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이 아픈 몸을 추슬러 마지막이 될지 모를 평양방문에 나선 김 전 대통령을 빈손으로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적어도 6자회담 참가와 납북자·국군포로 문제에서는 뭔가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비현실적이지는 않다.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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