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경호실, 에피소드… 변화상 소개 책 첫 발간
‘바람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특수훈련 속 ‘미소거울’ 보기
지난달 5일 다급한 목소리가 상황실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국립현충원에 한 여자가 이상한 가방을 두고 사라졌다"는 신고전화였다.
대통령 경호실이 발칵 뒤집어졌다. 현충일인 다음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요인들의 추념식이 예정된 바로 그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경호실 경호관들은 군(軍) 폭발물 처리반과 함께 즉시 현장으로 급파됐다. 가방 에 접근해 조심스레 X-레이 촬영을 한 결과 폭발물로 의심되는 배터리와 진동스위치가 눈에 띄었다. 일순간 경호관들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1970년에 북한 간첩이 대통령과 정부요인을 암살하려고 현충문에 폭탄을 장치하다 조작실수로 폭파사고가 난 사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유사 폭발물로 의심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즉각 현장을 통제하고 가방을 폭파시켰다. 그러자 리모컨으로 작동되는 어린이용 카메라와 게임기 등이 쏟아져 나왔다. 잡상인이 다음날 행사장에서 판매하기 위해 몰래 미리 반입해 놓았던 것. 잔뜩 긴장했던 대통령 경호관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통령 경호실이 11일 참여정부 경호실의 변화상과 에피소드를 엮은 책을 펴냈다. 베일에 가려있는 대통령 경호관들의 모습이 책으로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현충일의 '폭발물 처리' 에피소드도 이 책에 소개돼 있는 내용이다.
`바람소리도 놓치지 않는다'는 제목의 180쪽 분량의 이 책은 `대통령의 그림자'로 활약하는 경호관들의 활약상을 담은 화보와 함께 그들의 일상을 소개하고 있다.
경호관들은 국가원수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비장한 각오로 매일 집을 나선다고 이 책은 소개했다.
아침마다 목욕을 깨끗이 한 뒤 머리빗질도 단정히 하고 속옷도 깔끔하게 갈아 입는 일종의 `의식'은 최악의 경우 깨끗한 모습으로 자신의 시신이 수습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 대통령 경호관들은 대통령 및 국빈참석 행사에서는 항상 총기 등 장비를 휴대하고 다닌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총기사용이 금지된 만큼 위압감을 주는 총기를 드러내는 일은 좀처럼 없다는 게 경호실의 설명이다. 대통령 경호관의 조건은 ▲건강한 스포츠맨 ▲외국어 실력 ▲지리.역사.건축에 강할 것 ▲의전과 행사의 매니저 ▲능한 기능과 기술 ▲육감이 뛰어난 심리학자 ▲호기심 많은 공무원 ▲매너가 몸에 밴 젠틀맨 ▲두려움 제거 ▲겸손 등 10가지. 경호원은 태권도, 유도, 검도, 합기도 등 국가공인 무도 중 한가지를 선택해 3단 이상의 요건을 갖춰야 하며, 현재 대통령 경호관 대부분은 한 종목당 3단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합이 20단이 넘는 실력자도 있다고 소개했다. "바람의 냄새도 기억해내는" 수준의 경호실만의 '특수 훈련' 사실도 공개했다. 평소 미세한 소리에서부터 폭음과 총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리에 신체가 즉각 반응할 수 있도록 특수훈련을 하며, 짧은 순간에 설계도만 봐도 건물 구조와 배치도를 순식간에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을 경호관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 대통령 경호관이 되려면 평균 100대 1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체력과 체격도 중요하지만 요즘에는 외국어 실력이 수준급인 경호관들이 부쩍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경호관들의 책상위에는 웃는 강아지 얼굴 스티커가 붙어있는 동그란 '미소 거울'이 모두 놓여 있다는 점의 의외이다. 딱딱한 경호실 직원들의 얼굴을 풀고 친절하게 부드럽게 변해보자는 시도로 자신의 경직된 얼굴을 매일 들여보자는 취지에서 2004년 봄부터 모든 직원들의 책상에 놓여졌다고 한다. 격식을 벗고 국민과 직접 접촉하기를 좋아하는 노 대통령의 지침에 따라 참여정부 들어 경호시 '국민을 우선 배려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을 때 "우리가 백화점 안내원이냐"라는 강한 저항에 부닥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경호실내에 `블루 앙상블'이라는 색소폰 동아리가 생길 정도로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대통령 경호관들은 얼마전 사무실 안에 환경을 개선하려고 `미스테스(입을 닫고 비밀을 지킨다는 뜻의 고대 희랍어) 가든'이라는 작은 관상용 정원을 만들었다. 한반도 모양을 하고 있는 이 정원은 울릉도와 독도까지 형상화하고 있다. 독도문제로 한일관계가 경색됐을 때 경호실을 찾은 일본대사관 직원과 경호관들에게 `당당히' 소개되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이상헌 기자 honeybe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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