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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왼쪽)과 최장집 교수(오른쪽).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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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핑 글 “참여정부 매도 앞장서는 진보학자” 지칭
“참여정부 진보진영 비주류라서 실패, 참으로 놀라운 발견”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한다'는 제목으로 17일 게재한 청와대 브리핑 글에서 "참여정부를 매도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진보진영의 학자 한분"으로 지칭된 학자는 고려대 최장집(崔章集) 교수인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이 글에서 참여정부를 비판하는 진보진영 인사들의 논리를 비판하면서 '진보진영의 학자 한분'이라고 특정하면서 반박해 눈길을 끌었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가 진보진영의 비주류라서 실패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참으로 놀라운 발견"이라고 말머리를 꺼내면서 "오래전 저는 어느 모임에서 진보진영의 학자 한 분에게 '나는 비주류 중의 비주류라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했던 일이 있다"며 "지금은 참여정부를 매도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그분은, 그때 '그럴 것'이라고 상당히 힘주어 말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그런 제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어려운 처지의 저와 참여정부를 흔들고 깎아 내리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이 글에서 '진보진영의 학자 한분'의 실명을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은 최장집 교수를 염두에 둔 언급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한국 정치학계에서 진보적 흐름을 대표해온 최 교수는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을 맡은 바 있으며, 노 대통령 당선자 시절 취임사 내용에 대한 자문을 위해 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교수는 지난해 9월 경향신문 창간 60주년 특집 인터뷰에서 참여정부는 무능력과 비개혁 때문에 실패했으며, 실패한 이상 특단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한나라당으로 정권을 넘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지를 펴서 진보진영내 논란을 촉발시켰다.
최 교수는 당시 노 대통령에 대해 "사실상 정치적 탄핵을 받은 것"이라고 지적하며 민주세력과 참여정부의 결별을 촉구하고, "노 대통령은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거나 시도하면 안되며, 국민 의사에 순응하지 않으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독재자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특히 노 대통령에 대해 "처음부터 개혁에 대한 체계적이고 일관된 비전, 아이디어를 가졌던 리더나 정치세력이 아니었다"며 노 대통령이 변한 것이 아니라 애당초 개혁 리더가 아니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최 교수는 또 "참여정부는 보수파가 집권했을 때보다 더 과격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노 대통령의 정책적 특징을 사회구조를 신자유주의로 바꾸는 '보수혁명'이라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이후에도 여러 매체를 통해 이 같은 취지의 주장을 폈고, 이에 최근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가 최 교수의 주장에 비판을 제기했고, 다시 손호철 서강대 교수가 최 교수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는 등 진보진영내 논쟁으로 이어졌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브리핑 게재 글에서 "신문에서 참여정부를 비판하는 분들간의 논쟁을 보면서 난감함을 느낀다", "학자는 말하는 사람이고 집권한 정치인은 실행을 하는 사람이다. 말을 하는 사람은 제약이 없지만 실천을 하는 사람은 상황의 제약을 단 하나도 도외시할 수 없다. 주어진 조건에서 가능한 것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밝혀 진보학계내 논쟁을 염두에 두고 이 글을 작성했음을 시사했다. 특히 노 대통령 글의 논지는 최근 최 교수가 여러 매체들을 통해 주장하고 있는 참여정부 비판에 대한 반박의 성격이 짙다. 각각의 쟁점들에 대해 선명하게 논리적 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이 글에서 "제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여 '지역주의가 별 문제 아니다'거나 '일부 언론권력, 정치언론의 횡포가 별 것 아니다'는 논리까지 나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참여정부는 지금도 지역주의, 언론권력과 싸우고 있을 뿐, 책임모면이나 '알리바이'를 위해 지역주의나 언론 이야기를 한 일은 없다"는 대목은 최 교수에 대한 직접적 반박으로 볼 수 있다. 최 교수는 최근 진보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의 실패가 보수언론의 공격 때문이라는 분석에 대해 "그런 논법은 실패의 알리바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들은 "일부 진보진영의 시각에 대한 노 대통령의 비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등 개방에 대한 입장을 계기로 비판적 지적을 한 것은 오래 됐다"며 "다만 최근 진보진영내 논쟁을 계기로 다시 한번 정리해서 글을 쓰신 것"이라고 말했다. 성기홍 기자 sgh@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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