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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2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우리당 지도부 초청 만찬을 위해 당 지도부와 함께 만찬장으로 가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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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탈당 표명 이후
정치색 옅은 총리 내세워 정국 조율 나설 듯개헌추진 등 견해 엇갈려 ‘힘겨운 싸움’ 예고
한나라 “기획 탈당”…협조 구하기 쉽잖아 노무현 대통령이 22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탈당을 공식화해, 앞으로 정국 운영을 어떻게 해 나갈지에 관심이 쏠린다. 노 대통령이 탈당하면 국회에서 확실한 우군인 ‘여당’이 사라지는 셈이므로 자칫 레임덕(권력 누수)의 가속화를 가져올 수 있다. 정부가 열린우리당에 파견한 전문위원들도 조만간 철수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고위 및 실무 당정협의를 통해 주요 정책 현안과 각종 법률안을 사전에 조율한 뒤 입법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협조해 왔다. 이제 여야 개념이 사라지고 정부와 국회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변화하는 만큼 노 대통령은 정책 추진을 위한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 반대로, 대선을 앞둔 여야 정쟁에서 벗어나 좀더 원활하게 정책을 추진할 여지가 생길 수도 있다. 청와대는 열린우리당 중심으로 추진해온 당정협의를 앞으로는 국회의 모든 교섭단체를 대상으로 다각화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을 중요한 정책 파트너로 삼아 정국을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요청한 노 대통령의 핵심 참모는 “주요 정부 정책에 대해 각 정당, 국회 지도자들과 개별적인 관계로 논의를 진행하고, 협조를 구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며 “지난 2004년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업무 복귀 때까지의 틀을 준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당시 정부는 대통령 권한대행인 고건 총리 등이 각 정당 정책위의장단과 만나 주요 정책에 대한 협조를 구하는 방식으로 법률안과 정책 현안을 처리했다. 당적을 버린 노 대통령도 일상 정책 추진은 새로 임명될 총리에게 맡겨 각 당 정책위의장 등을 만나게 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국가 중대사에 대해서만 각 당 대표를 직접 만나 의견을 조율하는 형식을 취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노 대통령은 이를 위해 한명숙 총리 후임으로 정치색이 옅은 포용형 인사를 발탁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적으론 충청 출신이나 호남 출신 인사의 발탁이 점쳐진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정당의 요구가 앞으로 정치인을 내각에 쓰지 말라는 것 아니냐. 그런 요구가 적절히 반영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구상처럼 남은 임기 1년 동안 국정이 순탄하게 흘러갈지 속단하기 어렵다. 오히려 노 대통령 앞에는 넘어야 할 산들이 겹겹이 놓여 있다. 대선이 치러질 올 한 해, 각 정당은 참여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며 경쟁적으로 노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당적 정리를 ‘기획 탈당’으로 규정하며 반발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3월에 발의할 ‘4년 연임제 개헌안’을 비롯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국가 장기발전계획인 ‘비전 2030’ 등 역점 과제들은 한결같이 정치권의 이해와 견해가 명확하게 엇갈리는 것들이다. 한나라당은 특히 노 대통령이 자신의 탈당을 개헌안 발의의 진정성을 증명하고 국민 동의를 확보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경계하며, 개헌 발의 자체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충돌이 불가피하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밀려나는 대통령 되고 싶지 않았는데…” 침울했던 만창장
노대통령, 언론 공격엔 적극 대응 지속 밝혀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한명숙 총리, 정세균 의장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저녁식사는 사실상 참여정부의 당·정·청 최고위급 인사들이 이별을 고하는 ‘최후의 만찬’이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그토록 피하고 싶어 했던 탈당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 깊은 좌절과 자괴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는 오후 6시30분부터 2시간 가량 이어진 만찬에서 “임기 말에 과거처럼 당에서 밀려나는 대통령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잘못된 정치풍토를 결국 극복하지 못해서 안타깝다”며 “탈당이라는 말보다는 당적 정리라는 말을 쓰고 싶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또 “대통령은 단임 대통령으로서, 차기 대통령 선거의 당사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선거를 위해 대통령을 정략의 표적으로 삼아 근거 없이 공격하는 잘못된 정치풍토가 우려된다. 대통령의 당적 정리로 이런 정치풍토가 개선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는 말로 자신이 낡은 정치문화의 희생양이라는 점도 비교적 분명히 했다. 그는 특히 열린우리당 한 참석자가 “대통령도 자유로운 몸이 됐으니 한 걸음 쉬었다 갔으면 좋겠다”고 조언하자, “내가 비록 당적을 정리하지만, 언론의 페이스로 날 공격하는 것엔 대응하겠다. 진보 진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라고 답했다. 윤승용 청와대 대변인은 “정치인의 언론 플레이형 공격이나 언론의 일방적 공격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또 “열린우리당이 정책으로서 창당의 정체성을 잘 지켜왔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충분한 협의를 못해 미안하다. 행정을 하다 보면 결단의 방식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윤 대변인은 이날 만찬에 대해 “처음에는 침울했지만, 나중에는 어쨌든 각자 길은 다르지만 잘해 보자는 분위기로 끝났다”고 전했다. 신승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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