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9.05 19:44
수정 : 2007.09.06 00:05
‘청와대 방문 조사’ 한나라 공세에 인내심 폭발
‘도덕성 흠 있는 후보 대통령 불가’ 메시지도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비리의혹 검증 문제를 두고 한나라당과 신경전을 거듭해 온 청와대가 5일 이 후보에 대한 검찰 고소 방침을 밝히는 초강경 카드를 꺼내 들었다.
청와대는 일단 “참여정부에서 정치공작은 없다”는 거듭된 해명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배후설’을 주장하는 이 후보 쪽의 정치공세에 인내의 한계를 느끼고 고심 끝에 선택한 카드라고 설명한다. 문재인 비서실장이 “이 후보 자신에 대한 고소는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지만, 이 후보 본인까지 나서 여러 차례 그런 주장을 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결정한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대선을 석 달 남짓 앞둔 시점에서 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는 초강수를 선택한 데엔 복잡한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노 대통령으로선, 이 후보 쪽이 거듭 ‘청와대 공작설’을 제기하면서 청와대와 검찰, 국세청 등 국가기관의 기본적인 신뢰가 위기에 처하고, 나아가 대선 관리의 공정성까지 침해받는 상황을 더는 참기 힘들었을 수 있다. 더욱이 한나라당 경선기간의 이 후보 검증 공방에 대해 ‘청와대 배후설’을 제기해 온 이 후보 쪽의 진수희 대변인이 검찰에 불구속 기소된 뒤에도, 한나라당이 청와대 방문조사 방침까지 밝히며 공격 강도를 높이자 이 후보와 한나라당에 강력한 경고를 보낼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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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이 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겠다”고 밝힌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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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청와대가 이 후보 고소 방침을 본격적으로 논의한 것은 지난 3일 이 후보가 “권력의 중심세력에서 이것(국세청 등의 이 후보 검증)을 강압적으로 지시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라고 한다. 청와대는 특히 이 후보의 권력배후설은 검찰에 기소된 진수희 의원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이 후보를 기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법리적 자신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단순히 이런 목적만으로 격렬한 정치공방과 논란이 제기될 야당 대선후보의 검찰 고소를 강행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나라당뿐 아니라 정치권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도덕성에 의문이 많은 이명박 후보에 대한 검증 여론을 촉발해, 이 후보가 집권하는 것을 막겠다는 뜻을 분명히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실제, 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프로듀서연합회 창립식에서 ‘이명박 의혹’을 덮으려는 보수언론의 이중성을 비판했고, 4일 오후에는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이 후보의 불법 의혹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대한민국의 재앙이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이 후보 관련 의혹들 가운데 도곡동 땅 차명 의혹과 관련해 “이미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문제가 됐던 것으로 들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언론과 정치권의 철저한 검증만 이뤄진다면 이 후보와 도덕성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속에서, 이 후보가 청와대 배후설로 비리의혹을 물타기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는 셈이다.
문 실장이 이날 이 후보 고소 방침을 밝히는 회견 내내 “이 후보와 한나라당의 청와대 배후설은 오로지 자신에게 쏟아지는 검증을 회피 모면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것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정치공작”이라며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한 것은 청와대의 이런 기류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런 행동은 대통령의 대선 개입 논란에 불을 붙이며 오히려 현정부의 임기 말 국정운영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뿐 아니라 대통합민주신당을 비롯한 범여 진영에서도 반발이 나올 수 있다. ‘노무현 대 이명박’ 구도로 올해 대선판이 짜이는 것은 범여 진영에 유리할 게 없기 때문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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