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에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 정례회동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
“언론에 대책 먼저 알려져 죄송” 사과만
‘바른말 못하는 강대표’ 당청관계 우려도
19일 이명박 대통령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만남은 ‘소리만 요란한 빈수레’로 끝나고 말았다. 당초 강 대표는 국정 쇄신책을 당 차원에서 마련해 대통령에게 전달할 계획이었다. 당 관련부서가 준비한 쇄신안에는 최근 국정 운영을 비판하는 국민들의 신랄한 목소리와 총리의 권한 강화, 내각의 인적쇄신, 청와대의 정무라인 개편 등의 타개책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강 대표는 대통령 앞에서 민심수습책은 입밖에 꺼내지도 않았다. 대신 ‘사과’를 했다. 강 대표는 “(제가) 보고 받거나 최고위원회에서 논의도 하기 전에 (수습책이) 먼저 언론 등에서 알려져서 대통령께 누를 끼치게 되는 거 같아서 죄송스럽다”라고 말했다고 조윤선 대변인이 전했다.
강 대표는 이후 당최고위원회에 참석해서도 “(국정쇄신책은) 언론에 다 나와 내용을 아시니 대통령이 적절히 하시면 되지 않겠냐고 얘기했다”며 “앞으로 기사화하는 것은 청와대에 가서 절대 말하지 않겠다”며 화까지 낸 것으로 전해졌다.
강 대표가 대통령에게 ‘바른 말’을 못하리란 것은 어느 정도 예견돼 왔다. 강 대표와 이 대통령은 본래 지난 16일 회동하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청와대 일정”을 이유로 전날 갑자기 취소되면서 억측을 낳았다. 강 대표는 이어 “대통령에게 보고할 민심수습책이나 한나라당 자체 여론조사가 언론에 새나가는 것에 대해 진상 조사를 벌이겠다”며 정보 유출 문제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갔다.
당내에선 강 대표의 처신에 대한 비판론이 많다. 한 최고위원은 “정보의 보안도 문제이지만 현안에 대해 얘기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재선 의원은 “국민들이 쇄신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당으로선 그런 내용을 보고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강 대표가 먼저 우리 스스로 쇄신책을 마련하자고 얘기하지 않았느냐. 그래놓고 이제 와서 정보 누수를 이유로 민의를 전달하지 않는다고 하면 누가 일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일각에선 당에서 마련한 쇄신안이 이 대통령의 뜻과 맞지 않을까봐 얘기를 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쇄신안이 언론에 미리 나와 김이 빠진 측면도 있지만, 강 대표로선 총리의 권한을 강화하자고 대통령에게 말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청와대에서 수용 가능한 수준은 정책특보, 정치특보 신설, 정무기능 강화 등인데 당에서 주장하는 인적쇄신안에 대해 이 대통령은 부정적 생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당청 관계를 근본적으로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 눈치만 살필 경우 여당이 국민들 앞에서 제구실을 하겠느냐는 이야기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차기 당 대표로 여당과 청와대와의 관계를 긴밀하게 조율할 수 있는 ‘관리형 인물론’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상황에서 이렇게 당이 계속 청와대의 힘에 밀리게 되면 앞으로 여당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유주현 황준범 기자 edigna@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