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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왼쪽)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를 찾아온 일일 정치 체험학교 어린이들을 만나려고 윤상현 대변인(오른쪽)과 함께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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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총수사면 해줬건만 투자안해” 압박
전경련 “중소기업·건설부문 부진 탓” 진화
시민단체 “친재벌 MB노믹스 부메랑 맞아”
친기업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밀월관계를 구가하던 여권과 재계가 투자 부진의 책임을 놓고 파열음을 내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20일 차명진 대변인에 이어 21일에는 박희태 대표까지 나서 “재벌들이 몇십조원씩 쌓아놓고 투자를 안 하고 있다”며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박 대표와 차 대변인은 “정부가 여론의 비판을 무릅쓰고 비리 재벌총수에 대한 사면을 단행한 것은 경제살리기를 위해 적극 투자해달라는 뜻이 담긴 것”이라는 등의 직설적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여권이 일제히 ‘재벌 때리기’에 나선 것은 이명박 정부가 친기업을 내걸고 규제완화를 통해 투자·고용 확대를 국민에게 약속했는데, 현실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권은 특히 올해 상반기 건설·설비·무형고정투자를 합한 총고정자본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5% 늘어나는 데 그치고, 전경련의 30대 그룹 10% 추가고용 계획에 10대 그룹 대다수가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 등에 자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은 22일 오전 대책회의를 연 뒤 투자 부진을 대기업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오해라며 진화에 나섰다. 전경련의 이승철 전무는 “여당이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면 오해는 저절로 풀릴 것”이라며 “올해 전체 투자 수치가 안좋은 것은 중소기업과 건설부문의 투자가 크게 부진하기 때문이고, 30대 그룹의 투자 증가율은 20%를 넘는다”고 설명했다.
재계는 다른 한편으로 이명박 정부가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약속했지만 지금까지는 말로만 그친 것 아니냐며 오히려 역공을 가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규제완화는 발표만 됐지 실제 법이 바뀐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대기업들이 올해 투자를 늘린 것은 이것을 기대하고 한 것인데, 만약 이번 정기국회 때 규제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당장 내년 투자부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라면값을 잡는다고 물가가 안정되는 게 아닌 것처럼 정부는 기업 하나하나의 투자나 고용 수치를 챙기려 하지 말고 원칙과 큰 틀을 고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갈등에 대해 친재벌 정책으로 투자·고용 확대를 달성하겠다는 엠비(MB)노믹스의 문제점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친재벌, 규제완화가 아니라 고용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규제완화와 투자 확대를 ‘바터’로 한 이명박 정부와 재계의 ‘동맹’이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좌초하고 있는데, 이는 이미 실패가 예정됐던 것”이라며 “그동안 투자 부진을 재벌규제와 반기업정서 탓으로 돌려온 재계가 ‘부메랑’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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