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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불교도대회 봉행위원회가 정부의 종교편향에 대응하기 위한 상설기구 출범 등 장기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려고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종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범불교대표자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삼귀의를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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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통령 언행 어떻기에
민간 기업인 출신 자유주의·개인주의 성향도 한몫
“서울 봉헌” “예수의 리더십 지도자 될 것” 등 논란
정부의 ‘종교 편향’을 강하게 지적하는 불교계의 손가락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이명박 대통령에게 닿는다.
이 대통령의 기독교 편향 인식이 공직자들의 종교 편향 행태를 불러일으켰다는 논리다.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어청수 경찰청장 경질 요구도 종교 편향에 대한 대통령의 ‘실천적 반성’에 대한 촉구라는 것이다.
물론 청와대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종교 편향 사례 대부분이 공직자 개인 실수거나, 개별 교회나 민간에서 벌어지는 등 청와대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공직자들의 종교 편향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는 홍보성 경고도 했다.
그런데 너무 늦었다. 이 대통령은 얼마 전만 해도 기독교 편향으로 비칠 만한 발언과 행동을 거침없이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는 일요일 소망교회 예배에 참석할 때가 드물었으나, 당선 직후에는 한동안 소망교회 예배에 계속 참석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당선인 시절에도 “기독교 장로가 대통령이 돼서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한기총 특별기도회), “예수의 리더십으로 섬김의 지도자가 되겠다”(소망교회 당선 축하예배)라고 말하는 등 기독교 색채가 짙은 발언을 삼가지 않았다.
또 이경숙 인수위원장,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박미석 사회정책수석 등 소망교회 인사들을 핵심 요직에 앉혀 ‘고소영 인사’라는 말이 나오게 했다. 시 예산의 1%를 기독교 성시화(聖市化) 운동에 사용하려 했던 정장식 전 포항시장을 중앙공무원교육원장으로 임명했다.
이 대통령의 이런 언행은 우선 독실한 기독교 신앙이 밑바탕이다. 여기에다 민간기업인 출신이어서, 늘 남을 의식해야 하는 ‘공인 의식’보다는 개인의 권리를 중요시하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기독교 신앙을 너무 강하게 드러내지 말라는 주변의 지적에 “신앙은 개인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정치인들이 본능적으로 ‘표심’을 간파해 재빠르게 행동하는 데 비해, 이 대통령은 늘 ‘민심’을 읽는 게 한 박자 늦다. 이번 사태를 키운 또다른 요소다.
게다가 이 대통령의 ‘현장 중시’ 경향도 한몫했다. 이 대통령은 기독교 행사가 아니어도, 그곳에 가면 그곳 사람들의 언어로 그곳 사람들이 좋아할 말을 하곤 한다. 그곳에선 ‘분위기 좋았던’ 발언이 바깥으로 알려진 뒤 문제가 되는 경우가 허다한 이유다. 서울시장 시절의 ‘서울 봉헌’ 발언이 대표적이다.
청와대는 새 정부 들어 논란이 되고 있는 종교 편향 사례들에 대해 ‘우연’, ‘사고’, ‘실수’라고 주장하지만, ‘장로 대통령’의 기독교적 행보가 공직자나 민간 분야에서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낳았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또 지금까지 이 대통령에게 직접 “종교 문제에 대해 조심하라”는 조언을 한 참모들이 거의 없었다는 것도 문제다. ‘장로 대통령 등장’에 따른 전략적 준비와 선제적 대응이 없었기에 문제가 터진 뒤에야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등 허둥지둥 하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과의 ‘관계’에 자신감이 없는 참모들이 청와대에 대거 들어왔는데, 이들이 신앙과 같은 개인적인 부분을 대통령에게 강하게 언급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청와대는 일단 오는 9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어떤 형태로든 ‘불심’을 달래는 노력을 하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열쇠를 쥔 이 대통령이 문제의 심각성을 얼마나 깨닫느냐가 결국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한겨레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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