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며칠새 “IMF때와 달라”→“그때보다 심각”
본뜻 관계없이 혼란만…“정교한 메시지관리 필요”
이명박 대통령이 21일 국무회의에서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에 대해 “총괄적으로 아이엠에프(IMF) 위기 때보다 심각하다”고 이례적으로 ‘위기론’을 폈다. 그동안 펴오던 ‘낙관론’과는 상당한 온도 차가 느껴진다.
이 대통령은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아이엠에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며 낙관론을 강조해 왔다. ‘9월 위기설’이 떠돌던 지난달 9일 이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어려움은 있지만 위기는 전혀 없다”고 말한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현재 위기는 아이엠에프 때와는 다르다”(10월7일, 10월13일)고 말하는 등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함을 강조해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외국보다 더 심하게 요동쳤던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심리적 불안감을 덜어주려는 의도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여야 원내대표단과의 만찬에선 “정치 지도자들이 불안감을 부추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던 이 대통령은 지난 20일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선 톤을 달리 했다. 이날 그는 “아이엠에프 때는 아시아만의 위기였기에 우리만 정신 차리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나, 지금은 세계 전체가 실물경기 침체로 어려운 만큼 회복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21일 제기한 위기론은 ‘외환위기 당시에는 동아시아 지역만 어려웠을 뿐 세계경제는 좋았기에 극복이 쉬웠지만, 지금은 세계경제 전체가 어려워 우리 경제의 회복도 쉽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나온 말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 상황을 보는 이 대통령의 인식은 일관돼 있다”며 “지금은 아이엠에프 때와는 다르지만, 또 그때보다 극복이 쉽지 않다는 두 가지 측면을 다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도와 상관 없이 이 대통령의 발언이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이날 금융시장에선 주가가 하락했으며 원-달러 환율은 올랐는데, 이와 관련해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아이엠에프 위기 때보다 심각하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인식이 일관돼 있다 하더라도 여러 갈래로 말이 갈라져 나온다면 국민들 사이에선 오해와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특히 민감한 금융위기 상황에선 좀더 정교한 메시지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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