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대표 발언에 발칵 뒤집힌 청와대·친이계
참모진 긴급 대책회의…확전은 자제키로
이대통령 1일 회견…맞대응 가능성 낮아
“지도자답지 못한 발언”…“과실만 챙겨”
의원들은 부글부글…원색적 비난 쏟아내
청와대는 31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결정을 정면으로 비판하자 당혹감 속에 침묵했다. 반면 한나라당 친이명박계는 “박 전 대표도 이번 발언에 정치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격앙된 반응을 분출했다.
이날 오전 11시께 박 전 대표가 대구에서 신공항 백지화에 대해 “국민과의 약속을 어겨 유감스럽다. 신공항은 계속 추진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청와대 참모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일격을 맞고 충격에 빠졌다. 이날 오전까지도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그동안 친박근혜계 의원들과 접촉한 결과, 박 전 대표가 큰 틀에서 이 대통령과 뜻을 같이한다는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내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동안 전해받았던 기류와 다른 얘기”라며 당황했고, 다른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어느 정도 비판할 것으로는 예측했지만 이렇게 사실상 대통령을 겨냥할 줄은 솔직히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 참모들은 긴급히 대책을 숙의한 뒤, ‘무대응’, ‘확전 자제’로 가닥을 잡았다. 세종시 수정 논란에 이어 또다시 박 전 대표와 치고받는 모습은 서로에게 득 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청와대는 대변인의 오후 정례브리핑도 취소하고 침묵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오후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을 간접적으로나마 공격한 것은 아쉽다”면서도 “박 전 대표도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지역 정서 등을 고려해 나름의 정치적 선택을 한 것으로 이해할 대목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유쾌한 상황은 아닌 게 분명하지만, 이 문제가 양쪽의 전면전으로 비화하진 않을 것”이라고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놨다. 청와대는 이번 일이 지난해 8월 청와대 회동 뒤 유지돼온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화해’ 분위기가 깨지고 ‘각자의 길’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1일 오전 10시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표에 맞대응하는 모양새는 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회견에서 공약 무산에 대해 송구하다고 사과하고, 앞으로 해당 지역 방문이나 의원·단체장 면담 등 설득에 주력할 예정이다.
반면 한나라당 친이명박계에서는 “국가 지도자답지 못한 뒷북 발언”이라는 원색적 비판이 터져나왔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신주류로 평가받는 김무성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공약이 잘못된 것이라면 진정으로 이를 고백하고 포기하는 게 진정한 애국이고 용기”라며 박 전 대표를 겨냥했다. 그는 특히 박 전 대표가 신공항 최적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채 추진 의지만 강조한 데 대해 “지금 논란의 핵심은 어디가 신공항 입지로 적합하냐는 것인데, 그것도 무책임한 태도”라며 “이럴 때 욕먹을 각오를 하고 바른 얘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이계인 정두언 최고위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국가지도자라면 지역의 열망이 있더라도 국가 전체의 틀에서 국민 전체의 이익에 맞는 입장을 용기있게 펼칠 수 있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정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박 전 대표의 태도가 실망스럽다는 뜻”이라며 “자기 안방을 지키려다 전체 국민을 잃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한 최고위원은 <한겨레> 기자와 만나 “박 전 대표는 대통령과 면담을 해서라도 신공항을 하자고 주장했어야지 정부 발표 때까지 기다렸다 뒷북치는 발언을 하는 건, 책임은 안 지고 과실만 챙기겠다는 것”이라며 “책임 있는 정치인이 할 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황준범 신승근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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