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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권력이양’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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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제 권한이양뒤 한나라당 총리가 장관 제청권” 구상은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한나라당 주도의 대연정’을 제안함으로써, 그동안 흐릿했던 연정 구상의 실체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또 권력이양의 경로를 선명하게 밝힘으로써, “정권을 내놓겠다”는 말이 단순히 수사적인 차원이 아님을 과시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글에서 ‘두 단계의 권력이양’을 제시했다. 우선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가지는 연정”을 말함으로써,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내각에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넘겨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청와대 핵심 참모는 “내각제적 요소가 가미돼 있는 우리 헌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이라고 권력이양의 범위를 설명했다. 즉 국가원수로서의 지위나 군통수권, 계엄선포권 등의 권한만 남기고, 나머지 위임할 수 있는 권한은 모두 총리에게 넘길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경우 총리는 각료 제청권을 통해 사실상 장관들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국무회의를 주재해 국가 중대사를 결정지을 수 있게 된다. 현재 이해찬 총리가 누리는 ‘실세 총리’를 훨씬 뛰어넘는 권한이다. 두번째 단계는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대연정”이라는 표현에 담겨 있다. 박병석 열린우리당 기획위원장은 지난 10일 ‘노무현 대통령-박근혜 총리’라는 구상을 선보였는데, 이를 노 대통령이 사실상 추인한 셈이다. 청와대 핵심 참모는 이 경우의 장관 배분 문제에 대해 “현재 국회 의석수대로라면 열린우리당이 더 많이 차지해야 하나, 연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면 한나라당이 더 많은 장관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18개 부처에서 10개 이상을 한나라당이 차지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내용은 파격적이지만, 한나라당의 반응은 싸늘했다. 노 대통령도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한나라당도 당장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지만…”이라고 표현했다. 그래도 참모들은 “정치는 생물과 같아서 언제든지 불씨가 살아남아 있다”며 “노 대통령은 임기말까지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이날 “굳이 중대선거구제가 아니라도 좋다”고 말한 대목이 이런 ‘의지’와 직접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중대선거구제에 대해 “열린우리당은 영남에서 의석수를 늘릴 수 있지만,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한 석도 건질 수 없다”며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소선거구제를 기반으로 독일식 정당명부제나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실시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대권과는 거리가 있는 한나라당 중진들의 경우에는 현재의 텃밭을 지키면서도 정권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어서 ‘매력적인 제의’일 수 있다. 청와대 쪽은 비례대표 의석을 대폭 확대할 수도 있지 않으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즉 노 대통령의 이번 제안에는 중대선거구제 배제라는 제안을 통해 정권교체라는 미래의 불확실한 ‘어음’보다는 정권참여라는 ‘현찰’을 찾으려는 한나라당내 일부 세력을 끌어들이려는 전략적 고려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한나라당 흔들기’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전망과는 달리 현실적으로는 한나라당의 동요보다는 열린우리당의 내분이 먼저 터져나오고 있다.노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문희상 의장 등 당 지도부는 “지역주의를 극복하자는 우리 당의 창당정신을 구현하려는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며 사실상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송영길 의원은 “한나라당은 연정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과 정쟁의 대상”이라며 “예를 들어 대연정을 통해 한나라당 의원을 교육부 장관 시켜 놨는데, 참여정부가 지향하는 3불 정책에 반대하고 나선다면 그때 가서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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