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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07 22:23 수정 : 2005.09.07 22:23

지역구도 해소·부동산 대책등 모든 현안 간극
선거구제 개편 통한 ‘소연정’ 추진 가능성도

7일 만난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얼음과 숯’의 관계였다. 두 사람은 2시간30분 동안의 회담에서 단 한번도 상대방의 말에 동의하거나 맞장구를 치지 않았다. 감세 정책, 부동산 대책, 대학입시 등 모든 현안에서 철학과 노선의 차이만 드러냈을 뿐이다.

이날 만남의 이유인 대연정 부분에서는 그 간극이 더 벌어졌다.

노 대통령은 지역구도에 대한 정치인의 책임을 강조했으나, 박 대표는 “지역감정은 약화되고 있다”고 전혀 다른 진단을 내놓았다.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민생경제를 강조해온 점을 의식해 ‘민생경제를 위한 초당내각’을 제안했으나, 박 대표는 “노선이 같지 않아 함께 일할 수 없다”며 단호하게 뿌리쳤다. 또 박 대표가 지역구도 해소 방안으로 내놓은 행정구역 개편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이 “빨라야 10년이나 20년은 걸릴 것”이라며 걷어찼다.

회담 뒤 노 대통령은 “서로가 할 말은 다 한 회담”이라고 평했지만, 달리 보면 ‘서로 자기 할 말만 한 회담’이었던 셈이다.

노 대통령도 한계를 느낀 듯하다. 박 대표가 “오늘로 연정은 더 이상 말 꺼내지 않는 것으로 알겠다”고 한 데 대해, 노 대통령이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이렇듯 한발 물러선 것은 이날 회담에서 박 대표의 승복을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이날 회담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실패했음을 인정한 때문일 가능성이 더 높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축구경기 등을 예로 들며, 한나라당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국민임을 강조해왔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 자신이 ‘필생의 업’이라고 밝힌 지역구도 극복 과제를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대연정의 길이 막혔으니, 다른 길을 돌아가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게 더 상식적인 관측이다.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상생과 타협의 정치문화는 중요한 과제이고, 지역구도 극복은 시대적 과업으로 중단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앞으로 다른 방안을 연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우회로는 대연정을 버리고 소연정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연정의 궁극적 목적이 선거구제 개편이란 점을 여러차례 밝혀왔다. 민주당은 중대선거구제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있고, 민주노동당도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선호하고 있어 쉽게 공통분모를 찾아낼 수 있다. 물론 두 당 모두 연정을 거부하고 있고, 선거법 협상에서 한나라당을 배제하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난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소연정을 통한 선거구제 개편으로 한나라당을 고립시키고 압박하는 효과는 거둘 수 있으리라는 시각도 일부 있다.

 그밖에 노 대통령의 다음 수순으로 점쳐지는 것 가운데는 개헌 공론화, 탈당을 통한 중립내각 구성 등이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런 방안들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중남미 순방과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8일부터 열흘 동안 해외에 나가 있을 예정이다. 돌아온 직후에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대표와 청와대에서 회담을 가질 계획이다. 해외순방 기간 중에도 노 대통령의 두뇌회로에는 ‘대연정론’의 후속대책이 타고 흐를 것으로 보인다.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노 대통령, 특유어법으로 집요한 설득
박 대표, 매순간 말 끊으며 단호 대응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7일 회담에서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고 한다. 회담에 배석한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은 “웃음소리가 나온 적이 거의 없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노 대통령은 대연정 제안을 한 뒤 40여일 만에 만난 ‘파트너’를 특유의 어법으로 집요하게 설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 대표는 매 순간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대응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노 대통령에 견줘 훨씬 말이 적을 것이라던 애초 예상과 달리, 박 대표는 발언 분량도 노 대통령과 엇비슷했다.

배석자들은 노 대통령이 대체로 상기돼 있었던 반면, 박 대표는 내내 똑같은 어조로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유승민 한나라당 비서실장은 “특히 연정과 지역구도 타파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노 대통령이 엄청난 열의와 확신을 갖고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경제 현황 등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를 조목조목 들어가며 주장을 펼치는 등 치밀하게 준비된 모습을 보였다. 다만 박 대표는 ‘수첩공주’라는 별칭과 달리 전혀 발언 자료를 준비하지 않았으나, 노 대통령은 따로 메모를 준비했다고 한다. 한 배석자는 “노 대통령이 딱딱한 마분지로 3∼4장 정도의 발언 자료를 가져 왔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부탁과 압박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괴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이제 투쟁의 시대를 끝내고 대화와 상생의 정치로 가자는 것인데, 이것은 나의 이미지와 안 맞는 것 같아 노무현 시대를 빨리 끝내는 것이 어떨까 생각도 해 봤다”고 말했다.

한편, 박 대표가 이날 오전 평소 즐겨 입던 부드러운 색상의 길고 폭넓은 치마 대신 바지 차림으로 국회에 나오자, ‘연정은 안 된다’는 암시가 담긴 ‘패션 정치’ 아니냐는 말들이 나왔다. 한나라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박희태 국회부의장은 “오늘 그 옷을 입고 가느냐. 잘 싸우고 오시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과 박 대표의 회담은 박 부의장의 바람대로 결론이 났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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