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27 16:09
수정 : 2005.12.27 16:09
노무현 대통령이 27일 여의도 시위농민 사망사건에 대해 대국민 사과의 뜻을 표명한 것은 국정최고책임자로서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를 보이고, 사태 수습과 재발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지난달 쌀협상 비준반대 시위에 참가했던 농민들의 사망원인이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한 것으로 공식 확인된 상황에서 국민 앞에 직접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은 책임있는 공직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즉 공직사회 전반을 감시, 감독하는 최고 관리자로서 법 테두리를 벗어난 경찰의 불법행위에 대해 겸허히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이번 파문을 조기에 수습하고 국정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가 이날 대국민 사과가 `당연한 절차'라고 강조한 것에서도 노 대통령의 이런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한 핵심관계자는 "국가권력에 의해 국민이 목숨을 잃은 데 대해 사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도 전날 인권위 조사결과를 보고받고 "그렇다면 내가 사과를 하겠다"고 밝혔으며, 앞서 참모진은 경찰의 과잉진압이 사망원인으로 밝혀질 경우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진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의 사과는 참모들이 오래전 건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과잉대응이 사망원인이라는 전제 아래 대국민 사과 시기와 방식을 놓고 내부조율을 했다는 게 청와대측의 설명이다.
이런 정황에서 보듯 노 대통령은 농민이 시위 도중 숨졌다는 보고를 받은 시점부터 공권력이 남용된 이번 사태와 관련해 무겁고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핵심 비서관은 "같은 시위에서 2명이 사망한 것은 군사정부에서도 없었던 일"이라며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인권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사안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다른 참모는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심각하고도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며 "과거 어느 정부보다 인권을 중요시하는 참여정부라서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이는 과거 군사독재 정권에나 있을 법한 공권력의 폭력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며 대통령 사과와 경찰청장 사퇴를 요구해온 농민.시민단체들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노 대통령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찰에만 책임을 묻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비판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공권력은 어떤 경우에도 냉정,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어떠한 명분이나 정당성도 없는 폭력시위도 문제이지만 이보다 기본적으로 경찰이 공권력 행사에서 신중을 기하지 못한 책임이 훨씬 더 무겁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사과 회견의 본질이 이동될 수 있다"며 폭력시위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구체적으로 개진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의 책임소재를 따지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뜻은 공직사회, 특히 '특수공권력' 행사기관의 인권의식을 제고시키고 유사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위가 권위주의 정부 당시의 폭력적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시민사회를 상대로 설득과 함께 대안을 마련해 가는 정책적 노력이 병행될 전망이다. 노 대통령도 회견 마무리에 "모두 함께 이와 같은 사태에 자성하고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현 기자
jahn@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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