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문책인사 법적 근거 못찾아 “답답하다” ‘권한 남용’ 비난 피했지만 ‘힘의 한계’ 드러내
“답답하다.” 27일 오전 허준영 경찰청장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청와대 참모들은 한결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허 청장이 알아서 물러나주기를 바랐는데, 그만둘 뜻이 없음을 못박고 나왔기 때문이다. 쌀 협상 비준 동의안 반대시위에 참여했다가 숨진 농민 2명의 사망 원인이 경찰의 과잉진압임이 점차 드러나면서, 청와대 분위기는 허 청장 문책론 쪽으로 일찌감치 기울었다. 시위 도중 한꺼번에 2명씩이나 사망한 전례가 없었던데다, ‘서민의 편’임을 자부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체면이 구겨진 탓이다. 그러나 막상 청와대가 허 청장을 경질하려고 보니 대통령이 경찰청장을 문책 인사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찾을 수 없었다. 청와대 참모들은 법적 근거를 알아보기 위해 경찰법은 물론, 헌법재판소 결정, 각국 경찰 총수의 권한과 임기에 대한 자료까지 들춰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2년 임기가 보장돼 있는 경찰청장을 문책하려면 탄핵이나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탄핵은 정치적으로 아예 불가능하고, 징계도 인과관계가 분명해야 하는데 허 청장에게 정치적·도의적 책임은 물을 수 있어도 법적 책임까지는 물을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식적인 문책이 아니라면, 물밑으로 청와대의 뜻을 전달하며 사퇴를 종용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으나, 청와대 참모들은 입을 모아 그 가능성을 부인했다. 이들은 “이런 인사 문제를 소리 없이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프로’다운 것일지는 모르나, 참여정부의 체질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다른 참모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만에 하나 허 청장이 청와대의 주문을 정면으로 거스를 경우에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허 청장이 스스로 분위기를 읽고 결단을 내려주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노 대통령이 지난 19일 “책임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하고,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이 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루 앞두고 미리 ‘입장 발표’를 예고한 것 등은 사실 간접적인 의사전달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허 청장은 임기제를 방패 삼아 끝내 버텼고, 결국 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본인이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곤혹스러운 처지를 드러냈다.허 청장 진퇴와 관련한 노 대통령의 이런 접근 방법을 두고, 과거 정부와 달리 권한을 남용하지 않고 공개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밟아 우리 사회를 한걸음 더 진전시켰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권력 운영상에서는 더 큰 어려움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가뜩이나 ‘약체정부’라는 평판을 듣고 있던 참여정부로서는 힘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낸 셈이 됐다. 또 한때 청와대에서 치안비서관으로 일한 적이 있는 허 청장마저도 이번 일을 계기로 청와대와의 관계가 상당히 팍팍해진 점도 청와대가 안아야 할 부담으로 여겨진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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