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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05 19:14 수정 : 2006.01.05 19:14

‘1·2 개각’ 파문과 관련한 당의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긴급 조찬모임을 연 정세균 의장(오른쪽)과 김영춘 비상집행위원(왼쪽)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명파 재선 “이혼 결심 부부가 등거하는 셈”


“현재로서는 최선의 해법이었다. 그러나 깨진 항아리의 조각을 붙인다고 갈라진 금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1·2 개각’을 비판하는 서명에 참여한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5일 오전 당 지도부가 노무현 대통령과의 청와대 만찬을 ‘연기’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이렇게 말했다. 이번 파문이 낳은 ‘상흔’의 깊이를 가늠케 하는 발언이다. 의원들은 아침부터 그룹별로 모여 분주히 움직였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들이 주로 오갔다고 한다.

만찬 무산뒤 일단 갈등봉합 ‘파경 냉각기’
중진들까지 ‘미련’ 정리…관계 재정립 요구

당 지도부는 이날 두 갈래로 해석될 수 있는 태도를 보였다. 인사 문제를 더는 거론하지 않기로 방향을 잡음으로써, 단기적으론 개각과 청와대의 인사권을 둘러싼 파문은 일단 진정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당-청 갈등의 ‘봉합’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특히 당내 양대 정파인 정동영 전 장관계와 김근태 의원 쪽이 모두 대통령의 인사권을 존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정 전 장관의 핵심 참모는 “이번 개각에 대한 결정권은 대통령의 권한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게 정 전 장관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도 이날 전남 여수 해양엑스포 전시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대통령이 결정하신 것을 존중하고 고려하면서 당과 대통령 사이에 충분한 대화가 있으면 좋은 결과를 얻으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당 지도부가 청와대의 만찬 참석 요청을 거부함으로써 청와대의 일방적인 요구에 더는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한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만찬을 다음으로 연기한다는 모양새를 취하기는 했지만, 당이 청와대의 요구에 공식적으로 ‘노’라고 선언한 것은 이례적이다.

장기적으로는 당과 청와대가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갈등이 언제든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성명에 참여한 한 재선의원은 “지금 상황은 이혼을 전제로 한 부부가 동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근본적인 변화를 고민해 봐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의원들은 당-청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립을 요구하고 나섰다. 최재천 의원 등 지난 4일 성명을 낸 일부 의원들은 “정권인수위원회에 준하는 기구를 만들어 당과 청와대 그리고 정부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며 “현재처럼 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장관들이 일방적으로 당을 무시하는 구조에서는 정상적인 운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친노 계열’인 참여정치실천연대 소속 의원들의 모임에서도 “정무수석을 다시 부활시켜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왔다고 한다.

중진들의 태도가 변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 중진 의원은 “(이번 사태로) ‘심금’(마음의 줄)이 끊어졌다”고 말했다. 청와대에 남은 마지막 미련까지 정리했다는 것이다. 오영식 원내 공보부대표도 “지금까지 청와대와 충돌이 있을 때면 중진들이 나서 초·재선 의원들을 다독였다”며 “그러나 지금은 중진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의식을 직간접적으로 표시한 중진은 문희상, 임채정, 원혜영, 유인태 의원 등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파문을 계기로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 의원이 기반한 영남 쪽 민주세력과,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 개혁세력의 동거구조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여기에는 5월 지방선거 결과를 계기로 거대한 정계개편의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포함되어 있다.

한 재선 의원은 “이번 장관 인선 건은 노 대통령에 대한 정면충돌로 가기에는 약한 문제라 의원들이 물러서는 것일 뿐”이라며 “앞으로 새로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충돌의 세기는 더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청와대 ‘한 고비’ 넘겼지만…

여당과의 관계 인식 판이
뾰족한 대안 없어 “답답”

노무현 대통령이 5일 과학기술인 신년인사회가 열린 한국과학기술회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는 5일 ‘만찬을 미루자’는 열린우리당의 요청을 즉각 받아들였다. 만찬 연기가 ‘거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최악의 충돌은 피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 참모는 “서로 뻔한 얘기를 얼굴 붉히며 하기보다는 서로 냉각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고비는 넘긴 것 같다”며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청와대 참모들도 문제가 잠시 덮어진 것일 뿐 언제든지 다시 폭발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뾰족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한 핵심 참모는 “그동안 몇차례 당-청 관계가 휘청거릴 때마다 번번이 시스템 정비 얘기가 나와, 집중적으로 이 문제를 검토하고 대안을 찾아보려 했지만, 특별한 해법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당-청 간 의사소통만 하더라도, 당 의장과 항상 공식적인 통로를 열어놓고 대화하고 있지만 보안을 요구하는 내용들이 많아 150명 안팎의 거대정당 구성원들 대부분은 ‘협의한 적이 없다’고 불평하게 된다는 것이다.

상당수 청와대 참모들은 오히려 이번 개각 파문을 일종의 ‘문화지체’ 현상으로 설명하려 하고 있다. 한 참모는 “대통령은 돈과 조직, 공천권을 놓아버렸고, 정당은 상향식 공천으로 민주화되면서 정치적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지만, 당이나 청와대 모두 이런 변화한 상황에 의식의 변화가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구조적인 현상이므로 뚜렷한 처방이 있을 수 없고, 치를 수밖에 없는 비용이라는 인식이다.

일부 참모들은 대통령과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한 참모는 “의원들의 경우, 지방선거는 다가오는데 당 지지도는 바닥을 기고 후보들은 난리를 치니 위기를 체감하는 게 이해가 된다”며 “그러나 대통령은 단기적인 지지도 변화에 상대적으로 둔감하고 국가적 과제 해결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표를 생각하는 의원들로서는 유시민 의원의 ‘이미지’가 중요하지만, 대통령으로서는 그의 ‘능력’을 중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청와대가 당-청 관계를 이런 ‘거시적’ 시각에서 접근하면 당과의 접점을 찾기 어렵다는 데 있다. 아예 서로 의사소통하는 것부터가 힘들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만정이 다 떨어진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데, 그 반대쪽에선 청와대 관계자들이 “답답하다”고 한숨을 쉬고 있는 형국이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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