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25 19:45
수정 : 2006.01.25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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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내외신 새해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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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노대통령 “증세 주장 않겠다”에 담긴 뜻
노무현 대통령이 점점 속도가 붙어가는 ‘세금 논쟁’에 급제동을 걸었다.
노 대통령은 25일 새해 기자회견에서 “대통령도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은 할 수가 없다”며 “당장 증세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세금을 올리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그 방안으로 우선 세출 구조조정과 예산 효율화를 들었다. 씀씀이를 줄여 나가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바로 1주일 전의 말과 모순된다. 노 대통령은 18일 새해연설에서 “아무리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출구조를 바꾸더라도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감세론 허구성 따진뒤 조세 개혁 동력 삼을듯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한 ‘국정 브리핑’의 글도 오히려 대통령의 논리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이 글은 “복잡하고 여러 단계의 심사를 거쳐 한 사업의 예산이 반영되고 있기 때문에, 누가 봐도 낭비로 볼 수 있는 사업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줄일 만한 씀씀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또다른 대안으로 내놓은 △조세 감면 제도의 합리적 개선 △세원 발굴 △탈세 방지도 그 한계가 분명하다.
현재 운용 중인 비과세·감면 제도는 226개로, 이를 모두 없애면 30조원의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다는 산술적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이 제도는 중소기업, 농민, 저소득 자영업자, 근로자 등에 대한 지원 성격이 있어 한꺼번에 모두 폐지할 수는 없다. 또 감면 제도의 합리적 개선은 몇 해째 논란만 거듭된 ‘해묵은 숙제’다. 세원 발굴과 탈세 방지도 노 대통령이 18일 연설에서 이미 “한계가 있다”고 스스로 고백한 방안들이다.
이런 논리적 결함이 분명한데도, 노 대통령이 쐐기를 박고 나선 이유는 증세 논쟁이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치닫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증세가 안고 있는 위험성이 치명적이라고 보고 있다. 한 참모는 “대통령이 세금을 올리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대연정’ 정도의 제안을 한 100번쯤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표현했고, 다른 참모는 “유신체제가 무너진 것은 독재 때문이라기보다는 부가가치세를 도입한 탓”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세개혁을 가슴에 담고 있다 하더라도 입 밖에 내기 어려운 이유다. 참모들은 “증세는 참여정부에서 끝낼 과제가 아니라 다음 정권에 걸쳐서 장기적으로 풀어가려는 게 노 대통령의 ‘시간표’”라고 전하고 있다.
이런 설명대로라면, 최근의 논의는 청와대의 의도와는 달리 처음부터 지나치게 과열되고 있는 셈이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당분간 열기를 식히고, 낮은 수준의 논의부터 차곡차곡 밟아갈 필요성을 느꼈을 법하다.
노 대통령이 이날 “지금은 증세 논쟁을 할 때가 아니라, 감세 주장의 타당성을 따져 보아야 할 때”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곧, 한나라당이 내세우고 있는 감세론의 허구성을 깨뜨린 뒤, 그 동력으로 증세 논쟁에 들어가보자는 ‘단계론’인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로를 통해 논쟁을 끌고 갈지는 청와대도 고민하는 눈치다. 이병완 비서실장은 “증세에 대한 본질적 논의와 사회적 합의는 필요하다”면서도, 그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생각 중”이라고만 말했다.
김의겸 권태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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