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관리체계 부실 지적 비등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협상과 관련한 문건 유출 파문이 청와대의 강도 높은 자체 조사에도 불구하고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지난 1, 2일 3급 국가기밀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록과 `지난해 4월초 청와대 국정상황실 문제제기에 대한 NSC 입장' 이란 문건을 차례로 공개한 데 이어 3일에는 국정상황실의 내부문건이 유출돼 언론에 보도됐기 때문이다. 인터넷매체 프레시안이 보도한 국정상황실 문건은 `NSC가 한미간 외교각서 교환 사실을 인지하고도 1년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이다. 이는 한미협상 관련 보고부실에 관한 국정상황실의 지적에 대해 해명하는 NSC의 문건을 최 의원이 폭로한 지 하루만에 나온 것이어서 의문을 더하고 있다. 이는 청와대 내부에서 전략적 유연성 협상이란 한 가지 사안을 놓고 관련 부서가 상반된 주장을 제기하면서 `숨겨진 의도'를 갖고 서로를 공박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촉발할만하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실용외교 노선을 내세우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 내정자의 낙마를 겨냥해 최재천 의원이 던진 `부메랑'이 NSC를 거쳐 국정 정보가 취합, 정리되는 국정상황실로 향하며 청와대 내부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다시말해 지난해 4월 국정상황실의 문제제기에 따라 당시 이종석 NSC 사무차장을 상대로 벌어진 노선대립이 이 차장의 통일부 장관 내정을 계기로 재연되고 있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한미동맹 등 국익과 직결되는 민감한 외교기밀이 누가 무슨 의도를 갖고 어떤 경로를 통해 통째로 유출시킬 수 있느냐는 점이다. 당장 문건 내용이 무엇인지를 차치하고서라도 외교적 기밀사항이 포함된 문건이 유출된다는 사실 자체는 정부운영에 있어 기본적인 국가문서관리 및 보안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이번 유출 건은 특히 정치인들이 부처 보고와 관련 문서 요구 등 합법적 경로를 통해 인지한 기밀을 언론에 폭로하는 과거 사례와 달리 국가안보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청와대를 그 출처로 한다는 점에서 사안의 심각성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작금의 사태가 이종석 내정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벌어지고 있다는 점도 문건 유출이 특정 정파 또는 세력간 이념노선에 의해 정략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유사 사건이 재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더하고 있다. 더욱이 청와대의 자체 경위 조사 결과가 나와도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점도 여권으로서는 고민스런 대목이다. 현재 추정단계에 불과하지만 문건 유출이 청와대 내부자에 의한 것으로 최종 확인될 경우 그간 설 수준에 머물러온 이른바 여권내 `자주파'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정치권에 적지않은 파장을 야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4년 17대 국회 개원 후 모두 31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 국정원 관련 국가기밀 유출사건의 일부가 한미동맹 회의자료 등 양국간 협상내용인 점에서 비춰볼때 이번 문건유출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란 관측에서다. 아울러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보안문제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시스템 개편론과 함께 관련 법률 제.개정 의견이 정부와 정치권에서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4일 "현재 청와대 내부자에 의한 문건 유출로 추정하고 있다"며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자체 조사를 통해 유출자를 파악하더라도 본인의 시인이나 결정적인 물적 증거가 없는 한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김재현 기자 jahn@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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