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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사일 카드 갑자기 왜 꺼냈나
지난 5월 초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이 포착됐을 때만 해도 정부는 반신반의했다. 4월 하순 18차 장관급회담이 열린 뒤 5월 들어 남북관계가 그 어느때보다 순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월24일 북한의 일방적인 열차 시범운행 취소로 다소 불안한 상황이 조성되긴 했지만, 남북은 6월 초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열어 기존 합의 이행의 틀을 복원시켰다. 광주에선 6·15 공동선언 6돌을 맞아 민족통일대축전을 치렀다. 지난 12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이 미국 관리들의 말을 따 “북한이 대포동 2호 발사 실험을 1주일 안에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을 때도, 정부는 가능성을 부인하는 쪽이었다. 그러다 15일 정부의 핵심 외교안보 당국자가 나서서 느닷없이 ‘미사일 경보’를 발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교도통신>을 보면, 이는 북한이 불과 며칠새 액체연료 주입 전의 최종 발사 준비단계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파악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힐 차관보 평양방문 · 공동성명 이행 요구 공세
발사하면 정세 안갯속으로 … 미국 선택 촉각 지난 1998년의 1차 미사일 위기 등 북한이 보여온 미사일 카드와 핵위기의 상관관계로 미뤄볼 때, 북한의 의도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지난 1일의 북한 외무성 담화를 다시 보면, 북한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 담화에서 북한이 요구한 것은 6자 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평양 방문이다. “미국이 진실로 (9·19 베이징) 공동성명을 이행할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면” 힐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해 직접 설명하라는 것이다. 담화는 “미국이 우리를 계속 적대시하면서 압박도수를 더욱 더 높여 나간다면 우리는 자기의 생존권과 자주권을 지키기 위하여 부득불 초강경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라고 끝을 맺고 있다. 이 경고는 으레 하는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2일 한 미국 관리가 말했듯이 북한은 그동안 “미사일 발사에 완전히 부합하는 미사일 실험준비를 해” 온 것이다.
사실 이 담화의 핵심은 힐 차관보의 방북이라는 ‘분위기’만 마련된다면 6자 회담에 나오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특히 그 문맥을 보면, △미국에 대북 금융제재 해제를 먼저 요구하지 않고 △한반도의 비핵화와 핵포기의 전략적 결단을 재확인하고 △6자 회담과 9·19 공동성명이 북한의 이익에 부합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미국에 ‘공동성명을 이행할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기존의 기조와는 다른 것이었다. <교도통신>은 9일 힐 차관보의 방북을 위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까지 중재에 나섰다고 보도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담화에서 북한 스스로 ‘초강경 조처’라고 표현하고 있듯이 미사일 ‘발사 준비’와 ‘발사’는 다르다. 남쪽으로서는 지난 1993년 3월 비전향장기수 이인모 노인의 송환 발표 다음날 있었던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의 악몽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그때보다 남북관계에서 잃을 게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6월27일로 잡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은 가능할 것인가에서부터, 미사일 발사 시기는 그 전인가 후인가, 나아가 북한발 미사일 위기가 9월 일본의 자민당 총재 선거와 11월 미 중간선거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등등 미사일 발사는 북한 스스로도 풀기 어려운 복잡한 고차원 방정식의 셈법을 요구한다. 그러나 아직은 미사일 발사 준비단계다. 그렇다면 방정식은 간단하다. 미사일 발사 강행이냐, 북-미 직접협상을 포함한 6자 회담 재개냐의 양자택일이다. 15일 장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정례브리핑 발언은 매우 시사적이다. 그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우려보다는 ‘6자 회담 재개에 장애가 되는 요인들을 조속히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당국자가 미사일 경보를 발하면서 ‘상황이 이대로 간다면’이라는 단서를 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중은 미사일 발사 여부의 열쇠를 쥔 것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걸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한반도 정세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것이다.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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