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21 18:46
수정 : 2006.06.2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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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문제를 북한 쪽과 협의해 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오른쪽)이 21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방북 연기에 대한 기자회견을 갖기 전 참석한 ‘한반도 평화경영을 위한 공동학술회의’ 개회식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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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실무접촉 대표 밝혀
미사일 위기에 ‘날아간’ DJ방북
북한의 미사일 발사 조짐에 따른 동북아 정세 긴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달 말 방북을 결국 무산시켰다. 김 전 대통령 방북을 위한 실무접촉 남쪽 수석대표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1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준비시간도 부족하고, 돌출상황 때문에 5월에 합의한 김 전 대통령의 6월 말 평양방문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며 방북 연기 방침을 밝혔다.
정 전 장관은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김 전 대통령) 방북 초청은 유효하다”며 “북쪽과 3차 실무접촉 날짜를 협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전 대통령의 최경환 비서관도 “김 전 대통령은 이번 방북을 민족을 위한 생의 마지막 봉사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며 “상황이 어렵지만 그 뜻을 계속 지속시키실 것으로 본다”고 방북 재추진 뜻을 강하게 밝혔다.
김 전 대통령 쪽은 회견 전날인 20일 오후 늦게까지 방북 추진 강행·연기를 놓고 숙의를 거듭했다. 정 전 장관을 비롯한 몇몇 전문가들은 “미사일 문제가 진정 국면에 들어설 때까지 방북 일정을 일단 연기하는 게 좋겠다”는 뜻을 김 전 대통령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미사일 위기’에 따른 정세의 불가측성이 너무 높아, 현재로선 방북 강행이 김 전 대통령이나 북쪽에 모두 부담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정 전 장관은 “북쪽의 방북 연기 요청은 없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방북 연기 결정엔 20일 오후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의 만남도 일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최 비서관은 “버시바우 대사는 ‘다음 주든 그 이후든 평양을 방문하면 워싱턴의 생각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해달라’고 몇가지 요청을 했다”며 “방북 재고 요청은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버시바우 대사는 미사일 문제와 관련한 미국 쪽의 인식과 강경대응 방침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김 전 대통령에게 방북 재고를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김 전 대통령 쪽은 2∼3개월 안에 ‘미사일 위기’가 진정국면에 들어서면서 정세 예측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그 즈음에 방북을 재추진할 생각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 전 장관은 “비바람이 계속 치겠나, 언젠가 걷히겠지”라는 말로, 방북 재추진이 가능한 상황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는 희망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부의 한 관계자는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은 좀 늦더라도 이뤄지는 게 좋다”면서도 “남북관계의 전례에 비춰볼 때 한번 어그러진 일을 제 궤도에 올려놓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선, 김 전 대통령의 방북 문제가 오리무중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유야 어쨌든, 2차 남북 정상회담의 밑돌을 놓는 등 남북관계를 한단계 끌어올리고 공전상태인 6자회담에도 돌파구를 열 핵심 지렛대로 기대됐던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이, 미사일 위기라는 돌출상황에 부닥쳐 연기되는 바람에 정세의 불가측성도 그만큼 높아졌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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