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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29 19:02 수정 : 2006.06.30 17:17

미첼 리스 전 미국 국무부 정책실장(왼쪽)과 문정인 국제안보대사(연세대 교수)가 27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대담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미첼 리스 “대북포용정책 핵 규모만 키워”

문정인 “미 평화·외교해결 노력안한 탓”

미 국무부에서 정책실장 자리는 냉전시대의 조지 케난 이래 미국의 대외 정책과 전략을 입안하는 핵심 요직으로 꼽혀왔다. 미첼 리스 윌리엄앤메리 대학 부학장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에 의해 발탁돼 1기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최연소 정책실장(2003∼2005)을 지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케도)창립에 관여했으며, 케도 대표로 북한과의 협상을 맡았다.

지난 27일 신라호텔에서 동북아시대위원회 및 동아시아재단 후원 아래 외교안보연구원과 윌리엄앤메리 대학이 공동 주최한 1차 한-미전략포럼이 끝난 뒤, 문정인 국제안보대사(연세대 교수)와 만나 미사일, 핵, 한-미관계 등 동북아 정세에 대해 격론을 벌였다. 리스가 부시 행정부 안에서 네오콘(신보수주의), 국방부 등의 강경파와 구분되는 온건 협상파임에도, 대북 정책과 인식에서 두사람 사이엔 좁히기 어려운 간극이 드러났다.

북한 ‘미사일 발사’ 얻을 건 불투명, 잃을 건 확실


문정인(이하 문)= 북한 미사일부터 시작하자. ‘위기’라고 보나?

미첼 리스(이하 리스)= 아직은 ‘위기’ 국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까?

리스= 예측하긴 어렵지만, 발사까지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 이유는?

리스= 미사일 발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계산하기 어려운 반면, 이를 통해 책임져야 할 일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은 벌써부터 유엔 안보리를 거론하고 있다. 미사일 발사를 강행할 경우 다자 차원에서의 대북 제재 가능성마저 있다. 얻을 건 불확실하고, 잃을 건 많다. 북한으로선 미사일을 실제 발사하는 것보다 발사하겠다고 위협하는 게 유리할 것이다.

= 쏜다고 했다가 쏘지 않을 경우 타격을 받을 수 있지 않은가?

리스= 북한은 이미 충분히 타격을 입었다. 더 손해 볼 것이 없다.

= 미국과 일본의 일부 강경파가 상황을 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리스= 글쎄, 가장 과장된 반응을 보인 것은 부시 행정부가 아니라, (선제공격론을 내놓은 윌리엄 페리 전 대북정책조정관 등) 클린턴 행정부 출신이다. (웃음) 북한 위협론이 강화된 것은 미사일이 발사대에 올라갔기 때문이다.

= 부시 행정부가 북한 핵에 비관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데 대해 한국 내에선 우려가 있다. 특히 워싱턴 일각에서 북한의 핵무장을 기정사실화하고 그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북한을 고립·봉쇄하면서 김정일 체제를 전환시키려는 움직임이 대두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의구심도 있다.

리스= 그런 인식이 있다니 대단히 유감스럽다. 부시 행정부는 6자 회담을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왔다.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지 않았지만, 이는 북한이 협상에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모든 국가의 안보정책에는 우선순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9·19 공동성명이 나온 직후 위폐 문제가 불거지면서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계좌 동결 조처 등이 나왔다. 부시 행정부가 핵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핵 문제를 먼저 푼 뒤에 미사일이든, 생화학무기든, 위폐 문제를 포함한 이른바 ‘불법행동’이든 해결에 나서야 하지 않았을까?

리스= 미국은 북한이 핵무장하는 것을 막으려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방코델타아시아 계좌 추적은 미 법무부와 재무부가 몇 년간 수사를 해왔던 사안들이다. 세계 어디에도 돈세탁이나 자국 화폐 위조 등의 문제를 용인하는 정부는 없다. 이런 문제는 협상의 대상이라기보다, 처벌의 대상이다.

문= 중국의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통해 수천만명의 중국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닉슨 대통령이 직접 중국으로 가 만났다. 레이건 대통령도 ‘악의 제국’이라던 옛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만났다. 중요한 일이라면 양자든 다자든 대화의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뭐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리스= 양자접촉은 6자 회담 틀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져왔다. 고위급 접촉을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지난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아직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방북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핵 무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북한을 믿지 않는 것이다.

리스= 당연하다. 북한은 약속을 어겼다. 미국과 한 약속 뿐 아니라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등 한국과 한 약속도 어겼다.

문= 워싱턴에는 북한 ‘정권 교체론’을 주장하는 세력과 북한 ‘정권의 정책 행태’를 바꾸려는 세력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리스= 애초에는 북한 정권의 정책행태를 바꾸자는 쪽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이 취한 일련의 행동으로 보건대 (북한의) 핵무장이 아니라, 핵무장을 추구하는 정권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한국은 대북 포용정책을 추구하고 있지만, 북한에 투명성이나 상호주의 원칙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2000년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 대가로 얻은 게 뭔가?

=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았나?

리스= 지난 몇년 동안 뭐가 달라진 건가? 북한은 핵 보유고를 크게 늘렸다. 이는 미국이 강요한 게 아니라, 북한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평화를 위한 비용’을 지불하는 사이 북한의 핵 무장 규모는 서너배 커지고, 미사일은 발사대에 올려져 있다. 한국 정부의 포용정책으로 안보상황이 나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 부시 행정부가 북핵 문제의 평화적·외교적 해결을 위해 충분한 노력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 4차 6자 회담 전까지만해도 미국은 소극적이고, 때로는 비협조적인 태도마저 보여왔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외교적 노력을 충분히 했음에도 북한이 그에 호응하는 정책을 취해 오지 않는다면 미국과 보조를 맞추겠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리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평화번영 정책이 안보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는가? 객관적 상황을 따져보면 미사일은 발사대 위에 있고, 핵 무장은 더욱 강화됐다.

= 어떤 사안에 대한 평가는 정책결정자들의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만 보더라도 팽팽한 긴장이 흐르던 군사지역이 평화지대로 바뀌었다. 금강산 역시 마찬가지고….

리스= 그에 대해선 인정한다. 금강산이나 개성공단에 대해선 케도의 신포 경수로지구에서 일한 경험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6일 개성공단을 방문했는데, 케도를 처음 시작할 때 생각이 났다. 에너지와 활력이 넘쳤고,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게다가 남과 북이 케도의 틀 안에서가 아니라 직접 만나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활동하고 있다. 북쪽이 남쪽 인사들에게 직접 브리핑을 해주기도 하고, 긴밀히 접촉하고 있었다. 북한은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식의 직접 접촉을 극도로 꺼렸다. 대단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사일, 북핵 등 전체적으로 따지면 판단이 쉽지 않다.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리스=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양국 정부의 의지는 강하다. 협상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두 나라 모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미국은 한-미 FTA가 다른 아시아 국가의 모델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문= 핵심 쟁점으로 개성공단 문제가 거론되는데.

리스= 한국 정부의 입장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개성공단 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 이유가 뭔가?

리스= 부시 행정부 뿐 아니라 민주당과 공화당이 의회 차원에서 초당적으로 반대한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국제적 기준에 맞지 않는다. 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대에 올리는 등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데, 개성공단 문제를 양보하는 것은 이에 대한 보상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다.

= 미-일 관계로 넘어가 보자. 한국에선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대단히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이런 행태는 부시 행정부의 ‘친일 정책’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리스= 일본의 민족주의 문제는 북한의 미사일 실험이나 핵 무장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 북한의 행태가 일본에겐 전략적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외교적 노력 만으로 풀기는 어렵다. 한국의 평화·번영정책이 남북 관계 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 차원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도움이 됐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 미국이나 일본이 북한의 그런 행동을 조장·방치한 측면도 있지 않나?

리스= 조장·방치했다면, 마음 먹기에 따라 막을 수도 있다는 얘긴가? 미-일관계의 군사·안보적 측면은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진행돼왔다. 동북아에서 안보환경이 나빠진 것은 북한의 예측못할 행동 때문이다.

= 9·19 공동성명의 뼈대는 핵 문제 해결과 경협 및 에너지 지원, 한반도 평화체제 및 다자간 안보체제로의 이행 등이다. 이들 3개항을 순차적으로 진행시켜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은데, 현재와 같이 핵문제를 둘러싼 교착상태에선 병행추진할 수도 있다고 본다.

리스= 앞에선 핵 문제에 우선 집중하라더니 평화체제를 말하는 건 모순 아닌가?(웃음) 평화협정 문제는 더 큰 패키지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지만, 북한이 회담에 복귀하지 않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이다. 솔직히 북한은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협상을 진행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보니, 케도에서도 (북한은) 두 가지 협상을 한꺼번에 처리하지 못했다.

정리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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