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가수로 활동한 북한 가요계의 산증인. 그는 1938년 신춘명창발표회에서 ‘창부타령’과 ‘구영변가’를 불러 1등에 오르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광복 후에도 전문예술단에서 활동하며 ‘수심가’, ‘양산도’, ‘박연폭포’ 등 수많은 민요를 불렀다. 1990년 통일전통음악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 씨의 수기에 따르면 김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10월 4일 기자, 작가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인민이 부르기 쉬운 서정적이며 생활적인 노래라는 데 계몽기 가요의 특징이 있다”면서 “지난 시기 일부 편협한 사람들이 계몽기 가요를 부르지 못하게 막았는데 내가 부르도록 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이를 계몽기 가요에 대한 종전의 그룻된 인식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계몽기 가요를 다시 찾은 것은 우리 문학예술의 귀중한 성과의 하나”라면서 “이에 대해 창작가와 인민이 알아야 하며 노래도 우리의 것을 사랑하고 즐겨 부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언젠가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새 것을 창조한다고 해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무시해서는 안된다”며 “계몽기가요를 유행가라고 하면서 다 없애면 우리 나라(북) 문학사에서 공백이 생기게 된다”고 지적했다는 것. 1998년 1월에는 “우리는 계몽기 가요에 대한 인식을 바로 가져야 한다”면서 ‘찔레꽃’을 들며 “우리는 응당 우리 민족이 이룩한 귀중한 문화유산인 이런 노래를 다 찾아내고 자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1995년 1월에도 ‘눈물젖은 두만강’에 대해 “이 노래는 우리 민족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 통치 밑에서 신음할 때 망국에 처한 민족의 설움을 노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어느날에는 “계몽기가요 ‘봉선화’가 한 때 우리 인민 속에서 많이 유행되고 불리던 노래”라며 “이런 좋은 노래를 두고 무엇 때문에 록크(록)음악을 하며 디스코 음악을 하겠는가”라고 말했다고 김 씨는 수기에서 밝혔다. 김 국방위원장의 이러한 시각 속에 계몽기 가요와 관련한 음악연구토론회 등이 열리고 집단체조 ‘아리랑’과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과 같은 규모가 큰 행사,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 등 영화에서도 계몽기 가요가 울려 나오고 있다고 김씨는 전했다. 또 ‘민족 수난기의 신민요와 대중가요들을 더듬어’, ‘계몽기 가요 선곡집’, ‘신민요곡집’, ‘계몽기 가요 600곡집’ 등도 발행됐다고 말했다. 김관보는 계몽기 가요 명칭과 관련, 한때 일부에서 이러한 가요를 ‘30년대 가요’로 인식하는 현상이 있었다고 언급하며 “장군님(김 국방위원장)은 ‘일제 강점시기 조선민족이 당한 비참한 운명과 수난을 노래한 가요는 1930년대 가요라고 하지 말고 통칭해 계몽기 가요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
김정일 “디스코 록크보다 ‘봉선화’ 훨씬 낫다” |
“계몽기 가요(일제 식민 치하에서 불렸던 가요)를 널리 불러야 한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서민들의 애환을 달랬던 ‘눈물젖은 두만강’과 같은 가요를 계몽기 가요라며 널리 부를 것을 권장하고 있다.
북한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따르면 ‘진주라 천리길’ 등 많은 유행가를 지은 작사가 겸 극작가, 시인 조령출(1913.11-1993.5)의 미망인 민요가수 김관보(84)씨는 노동신문(3.26)에 수기를 기고, 김 국방위원장의 계몽기 가요에 대한 시각을 소개했다.
김 씨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가수로 활동한 북한 가요계의 산증인. 그는 1938년 신춘명창발표회에서 ‘창부타령’과 ‘구영변가’를 불러 1등에 오르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광복 후에도 전문예술단에서 활동하며 ‘수심가’, ‘양산도’, ‘박연폭포’ 등 수많은 민요를 불렀다. 1990년 통일전통음악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 씨의 수기에 따르면 김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10월 4일 기자, 작가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인민이 부르기 쉬운 서정적이며 생활적인 노래라는 데 계몽기 가요의 특징이 있다”면서 “지난 시기 일부 편협한 사람들이 계몽기 가요를 부르지 못하게 막았는데 내가 부르도록 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이를 계몽기 가요에 대한 종전의 그룻된 인식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계몽기 가요를 다시 찾은 것은 우리 문학예술의 귀중한 성과의 하나”라면서 “이에 대해 창작가와 인민이 알아야 하며 노래도 우리의 것을 사랑하고 즐겨 부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언젠가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새 것을 창조한다고 해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무시해서는 안된다”며 “계몽기가요를 유행가라고 하면서 다 없애면 우리 나라(북) 문학사에서 공백이 생기게 된다”고 지적했다는 것. 1998년 1월에는 “우리는 계몽기 가요에 대한 인식을 바로 가져야 한다”면서 ‘찔레꽃’을 들며 “우리는 응당 우리 민족이 이룩한 귀중한 문화유산인 이런 노래를 다 찾아내고 자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1995년 1월에도 ‘눈물젖은 두만강’에 대해 “이 노래는 우리 민족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 통치 밑에서 신음할 때 망국에 처한 민족의 설움을 노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어느날에는 “계몽기가요 ‘봉선화’가 한 때 우리 인민 속에서 많이 유행되고 불리던 노래”라며 “이런 좋은 노래를 두고 무엇 때문에 록크(록)음악을 하며 디스코 음악을 하겠는가”라고 말했다고 김 씨는 수기에서 밝혔다. 김 국방위원장의 이러한 시각 속에 계몽기 가요와 관련한 음악연구토론회 등이 열리고 집단체조 ‘아리랑’과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과 같은 규모가 큰 행사,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 등 영화에서도 계몽기 가요가 울려 나오고 있다고 김씨는 전했다. 또 ‘민족 수난기의 신민요와 대중가요들을 더듬어’, ‘계몽기 가요 선곡집’, ‘신민요곡집’, ‘계몽기 가요 600곡집’ 등도 발행됐다고 말했다. 김관보는 계몽기 가요 명칭과 관련, 한때 일부에서 이러한 가요를 ‘30년대 가요’로 인식하는 현상이 있었다고 언급하며 “장군님(김 국방위원장)은 ‘일제 강점시기 조선민족이 당한 비참한 운명과 수난을 노래한 가요는 1930년대 가요라고 하지 말고 통칭해 계몽기 가요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김 씨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가수로 활동한 북한 가요계의 산증인. 그는 1938년 신춘명창발표회에서 ‘창부타령’과 ‘구영변가’를 불러 1등에 오르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광복 후에도 전문예술단에서 활동하며 ‘수심가’, ‘양산도’, ‘박연폭포’ 등 수많은 민요를 불렀다. 1990년 통일전통음악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 씨의 수기에 따르면 김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10월 4일 기자, 작가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인민이 부르기 쉬운 서정적이며 생활적인 노래라는 데 계몽기 가요의 특징이 있다”면서 “지난 시기 일부 편협한 사람들이 계몽기 가요를 부르지 못하게 막았는데 내가 부르도록 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이를 계몽기 가요에 대한 종전의 그룻된 인식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계몽기 가요를 다시 찾은 것은 우리 문학예술의 귀중한 성과의 하나”라면서 “이에 대해 창작가와 인민이 알아야 하며 노래도 우리의 것을 사랑하고 즐겨 부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언젠가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새 것을 창조한다고 해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무시해서는 안된다”며 “계몽기가요를 유행가라고 하면서 다 없애면 우리 나라(북) 문학사에서 공백이 생기게 된다”고 지적했다는 것. 1998년 1월에는 “우리는 계몽기 가요에 대한 인식을 바로 가져야 한다”면서 ‘찔레꽃’을 들며 “우리는 응당 우리 민족이 이룩한 귀중한 문화유산인 이런 노래를 다 찾아내고 자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1995년 1월에도 ‘눈물젖은 두만강’에 대해 “이 노래는 우리 민족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 통치 밑에서 신음할 때 망국에 처한 민족의 설움을 노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어느날에는 “계몽기가요 ‘봉선화’가 한 때 우리 인민 속에서 많이 유행되고 불리던 노래”라며 “이런 좋은 노래를 두고 무엇 때문에 록크(록)음악을 하며 디스코 음악을 하겠는가”라고 말했다고 김 씨는 수기에서 밝혔다. 김 국방위원장의 이러한 시각 속에 계몽기 가요와 관련한 음악연구토론회 등이 열리고 집단체조 ‘아리랑’과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과 같은 규모가 큰 행사,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 등 영화에서도 계몽기 가요가 울려 나오고 있다고 김씨는 전했다. 또 ‘민족 수난기의 신민요와 대중가요들을 더듬어’, ‘계몽기 가요 선곡집’, ‘신민요곡집’, ‘계몽기 가요 600곡집’ 등도 발행됐다고 말했다. 김관보는 계몽기 가요 명칭과 관련, 한때 일부에서 이러한 가요를 ‘30년대 가요’로 인식하는 현상이 있었다고 언급하며 “장군님(김 국방위원장)은 ‘일제 강점시기 조선민족이 당한 비참한 운명과 수난을 노래한 가요는 1930년대 가요라고 하지 말고 통칭해 계몽기 가요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