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공업성은 1999년 11월, 원유공업성은 2003년 12월 원유공업총국서 승격됐으며 2002년 4월에는 수도건설위원회가 신설됐다. 전자공업성은 정보기술(IT)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국제적 추세에 따른 것이며 원유공업성은 북한의 에너지난에 따른 조치이다. 또 수도건설위원회는 2001년부터 평양시 도시개발을 대대적으로 추진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수도건설위원회는 신설 1년반만인 2003년 9월 폐지됐다. 이번 금속기계공업성과 같이 분리된 부서도 있다. 북한은 내각으로 개편한 이듬해인 1999년 3월 도시경영 및 국토환경보호성을 도시경영성과 국토환경보호성으로분리했다. 이는 북한이 평양과 지방도시에 대한 재정비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다 가뭄과 홍수에 따른 국토환경보호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정책과 맞물려 있다. 부서 명칭을 바꾼 사례도 있다. 경찰청에 해당하는 사회안전성이 2004년 7월 인민보안성으로, 문화예술성이 2001년 4월 문화성으로, 체육성이 1999년 11월 체육지도위원회로 각각 개칭됐다. 한편 1998년 내각으로 개편된 이후 총리를 비롯해 많은 부서장들이 교체됐다. 내각 총책인 총리는 2003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1기 1차 회의에서 홍성남이 함남도당 책임비서로 자리를 옮기고 화학공업상이었던 박봉주로 교체됐으며, 3명의 부총리도 곽범기를 제외하고 전승훈ㆍ로두철이 각각 새로 기용됐다. 또 20여 개 부서장이 경질됐는데 많게는 3명까지 바뀐 부서도 있다. 98년 이후 장수하고 있는 부서장은 백남순 외무상을 비롯해 10여 개 부서이다. (서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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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내각 어떻게 변화돼 왔나 |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지난달 30일내각의 금속기계공업성을 금속공업성과 기계공업성으로 각각 분리했다.
이번 조치로 북한 내각은 2 위원회, 29 성, 1 원, 1 은행, 2 국 등 모두 35개부서가 됐다.
내각은 `최고 주권기관의 행정적 집행기관이며 전반적 국가관리기관'(사회주의헌법 제117조)으로 규정돼 있는데 흔히 `경제 사령부'로 불린다.
지난 2002년 7.1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내각의 권한과 입지가 한층 강화됐다.
북한은 1998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 회의에서 주석제를 폐지하고 국방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면서 정무원을 내각으로 개편했다.
당시 개편된 내각은 31개부서(1 위원회, 26 성, 1 원, 1 은행, 2 국)였다.
이후 내각은 몇몇 부서가 신설ㆍ폐지되거나 분리되는 등 변화를 겪어 왔다.
신설된 부서는 전자공업성과 원유공업성, 수도건설위원회 등 3개 이다.
전자공업성은 1999년 11월, 원유공업성은 2003년 12월 원유공업총국서 승격됐으며 2002년 4월에는 수도건설위원회가 신설됐다. 전자공업성은 정보기술(IT)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국제적 추세에 따른 것이며 원유공업성은 북한의 에너지난에 따른 조치이다. 또 수도건설위원회는 2001년부터 평양시 도시개발을 대대적으로 추진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수도건설위원회는 신설 1년반만인 2003년 9월 폐지됐다. 이번 금속기계공업성과 같이 분리된 부서도 있다. 북한은 내각으로 개편한 이듬해인 1999년 3월 도시경영 및 국토환경보호성을 도시경영성과 국토환경보호성으로분리했다. 이는 북한이 평양과 지방도시에 대한 재정비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다 가뭄과 홍수에 따른 국토환경보호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정책과 맞물려 있다. 부서 명칭을 바꾼 사례도 있다. 경찰청에 해당하는 사회안전성이 2004년 7월 인민보안성으로, 문화예술성이 2001년 4월 문화성으로, 체육성이 1999년 11월 체육지도위원회로 각각 개칭됐다. 한편 1998년 내각으로 개편된 이후 총리를 비롯해 많은 부서장들이 교체됐다. 내각 총책인 총리는 2003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1기 1차 회의에서 홍성남이 함남도당 책임비서로 자리를 옮기고 화학공업상이었던 박봉주로 교체됐으며, 3명의 부총리도 곽범기를 제외하고 전승훈ㆍ로두철이 각각 새로 기용됐다. 또 20여 개 부서장이 경질됐는데 많게는 3명까지 바뀐 부서도 있다. 98년 이후 장수하고 있는 부서장은 백남순 외무상을 비롯해 10여 개 부서이다. (서울/ 연합뉴스)
전자공업성은 1999년 11월, 원유공업성은 2003년 12월 원유공업총국서 승격됐으며 2002년 4월에는 수도건설위원회가 신설됐다. 전자공업성은 정보기술(IT)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국제적 추세에 따른 것이며 원유공업성은 북한의 에너지난에 따른 조치이다. 또 수도건설위원회는 2001년부터 평양시 도시개발을 대대적으로 추진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수도건설위원회는 신설 1년반만인 2003년 9월 폐지됐다. 이번 금속기계공업성과 같이 분리된 부서도 있다. 북한은 내각으로 개편한 이듬해인 1999년 3월 도시경영 및 국토환경보호성을 도시경영성과 국토환경보호성으로분리했다. 이는 북한이 평양과 지방도시에 대한 재정비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다 가뭄과 홍수에 따른 국토환경보호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정책과 맞물려 있다. 부서 명칭을 바꾼 사례도 있다. 경찰청에 해당하는 사회안전성이 2004년 7월 인민보안성으로, 문화예술성이 2001년 4월 문화성으로, 체육성이 1999년 11월 체육지도위원회로 각각 개칭됐다. 한편 1998년 내각으로 개편된 이후 총리를 비롯해 많은 부서장들이 교체됐다. 내각 총책인 총리는 2003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1기 1차 회의에서 홍성남이 함남도당 책임비서로 자리를 옮기고 화학공업상이었던 박봉주로 교체됐으며, 3명의 부총리도 곽범기를 제외하고 전승훈ㆍ로두철이 각각 새로 기용됐다. 또 20여 개 부서장이 경질됐는데 많게는 3명까지 바뀐 부서도 있다. 98년 이후 장수하고 있는 부서장은 백남순 외무상을 비롯해 10여 개 부서이다. (서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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