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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13 20:12 수정 : 2005.06.13 20:12

지난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때 평양을 방문했던 최학래 한겨레신문사 고문(오른쪽)과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이 10일 남북공동선언 5돌의 의미와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우린 대화 잘되게 분위기 띄워야죠

지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말할 때 흔히들 ‘역사적인’이란 수식어를 앞세운다. 당시 한국신문협회장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역사의 현장을 함께 했던 최학래 한겨레신문사 고문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정상회담의 산파역을 한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경남대 총장)을 만났다. 역사의 현장에서 느꼈던 흥분은 여전했지만, 지난 5년을 되돌아보는 두 사람의 눈길에선 아쉬움도 묻어났다. 두 사람은 6·15 남북공동선언 5돌 기념행사에 정부대표단의 자문단 자격으로 참석하기 위해, 14일부터 평양을 방문한다.

최학래 전 한국신문협회장= 5년 전 오늘을 생각하면 착잡하다. 6월13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포옹을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당시 통일부 장관으로서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갖은 애를 썼던 박 장관은 소회가 남다를 것이다.

박재규 전 통일부장관= 2000년 4월에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고 발표하지 않았나. 그 때 발표가 나가자, 많은 언론에서 선거를 앞두고 나온 ‘정치적인 쇼’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주무장관으로서 걱정을 많이 했다. 기왕 역사적인 회담을 하는 마당에 뭔가 합의서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7·4 남북공동성명이나, 91년 남북기본합의서처럼 뭔가 나와야 하지만, 대리 선언은 안 된다고 판단했다. 김 위원장의 ‘수표’(서명)가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일부에선 김 위원장이 순안공항에 나오는 것을 미리 알고 가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그건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공항에 내려서니 턱 하니 나와 있지 않았나. 모두들 ‘와∼!’ 했다. 꿈을 꾸는 것도 같고…. 감격해서 15년간 끊었던 술도 마시게 됐다. 김 위원장 노력도 컸다. 그렇게 남북관계의 냉전시대가 가고, 화해협력 시대로 바뀌게 된 것이다. 요즘 핵 문제도 불거지고, 남북관계도 오해 때문에 서다가다 하고….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진전이 없어 안타깝다.

핵 폐기-대북지원 동시 주고받아야

= 뭐니뭐니해도 목련관 만찬(14일 밤)에서 두 정상이 공동선언에 합의했다고 손을 치켜들며 외치던 순간이 정점이 아니었나 싶다. 사복을 입은 북쪽 군 차수며 대장들을 김 위원장이 불러 김 대통령에게 술을 따르게 하고 거수경례까지 시키지 않았나. 인민군 최고 수뇌가 남쪽 군 통수권자에게 술을 따르고, 김 대통령도 그들에게 일일이 술을 부어주고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화해를 하고 전쟁을 없애자는 상징적 몸짓이었다. 아직 그 감동이 살아 있는데, 남북관계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안타깝다.


= 회담 직후 만찬을 하는 도중에 두 정상이 무대 앞으로 나와 손을 흔들며 완전히 합의했다고 외쳤는데, 왜 그런지 아나? 공동선언의 5가지 합의사항에 대해선 문구만 달랐지, 합의가 돼 있었다. 문제는 만찬 시작할 때까지 김 위원장이 합의서에 수표한다는 결심이 서지 않았다. 북은 김용순 비서가 대신 서명하겠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그러다 여덟시쯤 되니까, 김 위원장이 술도 한잔 하고 그러더니 ‘전라도 고집한테 졌다. 수표하기로 했다. 문구 수정도 끝냈다’고 얘기하더라. 아마도 김 위원장이 (직접 서명하기로) 결심을 해놓고, 장군들 보고 대통령께 술 한잔 올리고 축하하라고 한 게 아닌가 싶다. ‘예전에 대리서명을 했지만, 이번엔 직접 서명하니 꼭 지켜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군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니 당신들도 앞으로 발목잡지 말라.’ 이런 뜻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 박재규 전 장관 김위원장 만찬때 직접 서명 공동선언 큰 의미
= 나야 기자로서 관찰자였지만, 그 때 뭐가 가장 심각한 문제였나?

=통일방안이었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연합제와 북쪽의 연방제를 결합시켜,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문구가 나오게 됐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문제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북쪽은 지금 약속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버텼다. 결국 적절한 시기에 분위기가 조성되면 내려오자고 했다. 이 문제가 끝난 뒤 선언문 수표 문제가 남았다. 김 위원장의 서명을 받아냈다는 게 가장 큰 성과다.

= 북에서 김 위원장의 직접 서명이 갖는 의미에 대해선 북쪽 사람들과 접촉이 있던 사람들이라면 그 무게를 알 것이다. 남한을 딛고 미국으로 가는 게 빠른 길이고, 그것이 민족 공존번영에도 효과적이라는 김 대통령의 말에 김 위원장도 결국 동의를 한 것 아니겠는가.

= 5년여가 지나면서, 뭐가 역사적이었는지 생각해봤다. 남쪽에선 가장 중요한 게 전쟁 뒤 이어져 온, 이른바 ‘적색공포증’이 사라졌다는 점일 것이다. 걸핏하면 누가 쳐들어올까 염려하고, 라면 사재기하고 하는 공포증에서 해방되는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 얼마 전 윤이상 음악을 기리는 재단을 설립하자고 했을 때, 과거 상반된 주장을 하던 분들이 모인 일이 있다. 그 자리에서 ‘이념을 가지고 문제삼는 건 윤이상 선생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재단 설립 자체가 윤 선생에 대한 명예회복이고, 그의 음악을 발전시키는 게 남남갈등 해소와 남북 문화교류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더니 진보-보수 진영이 모두 동의했다. 그래서 문화관광부에 등록도 마쳤다.

= 남쪽도 여러가지 순기능이 많았지만, 북쪽에서도 지난 5년 간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중국·베트남 모델 얘기가 나오고, 경제시찰단이 중국과 베트남, 남쪽에도 오고 했다. 그런데 조지 부시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대북 강경발언이 나오고, 다시 핵카드를 커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 북쪽의 변화 시도가 다른 커다란 물결에 의해 차단당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지 않나 싶어 걱정이다.

= 북쪽의 변화는 밑에서부터라기보다 위에서 내려오는 변화라고 본다. 그 동기가 남북 정상회담이고, 그 뒤 많은 이들이 오가면서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오게 됐다. 일부 환경 변화에 의해 조금 조정될 수는 있겠지만, 과거 냉전시절로 돌아가선 안 된다고 본다. 북쪽도 많이 변했기 때문에 조금 조정해서 가더라도 과거 체제와는 다른,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북한에 맞는 식으로 갈 것이다.

▲ 최학래 한겨레신문사 고문 술 부어주고 화해하던 모습 어른한데…
= 북쪽이 변화의 첫단추를 조심스럽게 꿰고 있다. 문제는 공급 부족에서 오는 인플레이션은 공급을 늘리지 않고는 해결이 안 되는데, 자체 생산에 따른 공급 확대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핵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지 않나. 북쪽을 보고 먼저 핵을 폐기하라고 하는 것은 청산가리를 마셔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적색공포증·라면 사재기 사라져

= 2차 핵 문제가 대두되고 나서, 지난해 베이징에서 열린 3차 6자 회담까지의 합의사항이란 게 ‘대화로 평화적으로 풀자’는 원칙 정도다. 남쪽은 중간에서 이 문제를 극과 극에서 접근하려 하지 말고, 동시에 주고 받기식으로 하자고 해야 한다. 체제 보장과 핵 폐기 선언을 동시에 하고, 그 뒤에는 미국에게 대북 경제지원에 동참하라고 하고 설득도 해야 한다.

= 옛날 얘기만 한 것 같다. 이번에 평양 갈 텐데, 가서 어떤 일을 할 계획인가.

= 당국 대표단 일원으로 가면 자문 역할 밖에 없지 않나. 당국 간에 모처럼 만나는 만큼 장관급 회담이 아니더라도 서로 기분 상하지 않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남는 시간이 있으면 남과 북을 오가며 만났던 사람들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대화도 나누고, 정도 나누고 싶다. 북쪽 윤이상 선생 연구소 쪽에서 요청이 있으면 공식 행사가 끝난 뒤에 혼자라도 잠시 들러 격려도 좀 하고 싶다.

= 박 장관은 이번 대표단 가운데 김 위원장을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인데, 김 위원장이 만나줘야 하는 것 아닌가?(웃음)

= 전적으로 김 위원장 판단 아니겠나. 만날 수만 있다면 터놓고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리 강태호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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