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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14 19:25 수정 : 2005.06.14 19:25

오형재/서울시립대 명예교수 북 오영재 시인의 동생 \

공동행사 방북단에 거는 기대

제1차 이산가족 상봉 때인 2000년 8월15일, 헤어진 지 50년만에 북한의 오영재 계관시인을 서울 코엑스 컨벤션홀에서 만났다. 1950년 7월, 전남 강진의 한 작은 중학교를 다녔던 오 시인은 중3, 필자는 중1이었다. 형은 반의 몇몇 급우들과 함께 의용군에 차출됐다. 당시엔 의용군에 차출돼 간 학도병들도 얼마 지나면 다시 부모의 품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그 ‘얼마’는 50년이 되어, 노년기에 이른 형님이 컨벤션홀에 나타난 것이다. 6·15 공동선언의 가시적 성과이기도 했다.

사흘간의 만남의 마지막 날,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100명 단위의 만남으로는 다시 만날 기회가 없겠지만, 남북 문인간의 만남을 나와 형이 남과 북에서 주선해 봅시다. 형은 북에서, 나는 남에서 말이요.” 이 말에 형님은 나를 한참 응시하다가, “너는 공학 박사가 아니냐”고 했다.

그 뒤로 필자는 남북한 교류행사가 남쪽에서 개최될 때마다 참석했다. 3·1절, 6·15행사, 추석, 개천절 등의 행사가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가며 개최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워커힐에도 가보고 인천에도 가보았다. 형님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부문별 대화가 얼마나 생산적으로 돼가는지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올해 6·15행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그 관심과 규모가 컸다. 북에서는 이미 105명의 분야별 전문가의 명단이 확정됐고, 그 가운데 오영재 시인은 시 분야에 포함돼 있었다. 필자도 어려운 관문을 헤치고 1차 615명의 대표단 대열에 끼었으나, 2차 관문에서 애석하게 탈락했다.

필자는 6·15 선언의 의미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그러나 꼭 유념해야 할 개념이 있다면, 그것은 남북간에 공유 가능한 공통분모를 최대한 개발하고, 이를 극대화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질감 안에서 동질감을 찾자는 것이다. 오 시인은 서울방문 사흘 동안 우리와 만나면서 ‘이렇게 얼싸안았을 때 우리의 체온과 눈물은 같지 않느냐”고 했다. 창덕궁을 방문한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창덕궁과 묘향산의 매미 소리가 같더라”고 말했다.

평양을 방문하는 300명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화려한 축하행사도 좋지만, 많은 분야에서 생산적인 대화를 했으면 한다. 시 분야를 예로 든다면 이렇다. 지난번 각 방송국에서 방영된 오영재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일련의 시가 남한의 많은 분들에게 호소력을 가졌던 것은 시의 표현 자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머니’라는 말이 내포하는 폭넓은 포용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북한 문인들이 ‘어머니’ 외에 ‘고향’이나 ‘우정’ 등과 같은 테마를 선정해,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작품 발표회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계층에서 통일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러나 통일은 어디까지나 현실이지, 감정에 기반한 선언적 구호는 될 수 없다. 우선 쉬운 것부터,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해 나가야 할 것이다. 편지 왕래가 가능하도록, 그리고 서로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는 일부터 결행됐으면 한다. 금강산이나, 판문점 혹은, 도라산 부근도 좋다.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이 당장 어려우면 미룰 수도 있다. 최근의 이산가족 상봉 때는 남쪽의 가족이 북의 혈육을 만났을 때, 상대방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열하는 장면이 방영됐다. 이들의 처절한 사연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북한 형님의 막내 딸인 은하는 필자에게 자신이 8년간 꼈던 반지를 지난 상봉 때 편지와 함께 보냈다. 그때의 감격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고, 조카가 한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반지의 직경이 약간 작아 시내 보석상에 가서 늘려달라고 했다. 여성인 사장은 ‘이런 반지는 서울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다’며 필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텔레비전에서 이산가족 상봉 때 본 것 같다’며 무료로 키워주었다. 이번에 가게 되면 그 반지를 꼭 끼고 가려 했는데….

이 글이 필자도 모르는 사이에 이산가족의 염원을 많이 반영하는 방향으로 편향되고 있음을 안다. 핵 문제와 경제협력을 위한 노력 못지않게, 6·15의 기본 정신에는 천만 이산가족을 위해 국민 모두가 같이 애달파 해주는 노력도 포함돼 있음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이번 방북단의 좋은 성과를 기대한다.

오형재/서울시립대 명예교수 북 오영재 시인의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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