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 오빠.동생 만난 북 왕옥희씨 ‘뼈있는 충고’
"돈 벌어 통일사업에 이바지하라우야".남측의 오빠 왕경중(77)씨와 동생 경도(70)씨를 화상상봉한 북측의 옥희(75.여)씨는 대뜸 `뼈있는' 충고를 한마디 던졌다.
화상상봉이 시작된 뒤 서로 어릴 적 사진을 보여 주면서 과거를 하나씩 더듬으며 `추억찾기'에 몰두하던 옥희씨는 남북의 분단 현실로 주제가 옮겨가자 손짓까지 해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옥희씨는 "돈 번 것을 이래저래 쓰지 말고 통일사업에 쓰도록 해야 돼"라며 몇 번이나 되뇌었다.
이에 동생 경도씨는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내 과거 헤어질 당시의 얘기로 화제가 자연스레 옮겨갔고, 기억을 하나씩 되짚을 때는 큰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특히 경도씨는 누나의 학창시절 친구들과 교복차림으로 함께 찍은 빛바랜 작은 사진을 확대해 보여주는가 하면, 산에 딸기를 따먹으로 갔다가 나뭇가지에 긁혀 누나가 직접 치료해 준 왼쪽팔의 흉터를 들어보이며 누나의 기억을 되살렸다.
옥희씨는 8남매 중 6명이던 딸 중 유일하게 대구 신명여고에 유학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할 정도로 당시 보기 드문 인텔리 였다고 한다.
8남매 중 7째로 영주 인근 문전리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옥희씨는 인민군이 물밀듯이 내려오자 친구들과 함께 영주 시내로 갔다가 청년회에 가입한 이후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
나중에 영천 어디에선가 인민군 문화선전요원으로 활동한다는 뜬 소문만이 여기저기 돌아다닐 뿐이었고 그렇게 55년이 지난 이 날 다시 만난 것이다.
경도씨는 "당시 그렇게 가지말라고, 가지말라고 말렸는데 금방 오겠다고 해놓고는.."이라면서도 누나를 만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듯 절대 찡그리지 않았다.
상봉 전 약속처럼 상봉 내내 눈물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반세기가 훨씬 넘어 혈육과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그는 한없이 행복해 보였다.
(서울=연합뉴스)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