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안영근 일기-남측 동생들이 소개
"낭구(나무)를 하러 가라구 할머니가 그래서 심발(신발)도 마땅하고 그래서 산으로 책을 가지고 산보를 갔습니다..." "오날(오늘)은 아침을 일찍 먹고 버리밭(보리밭)을 매로가서 한 짐을 매고 해가 너머간 뒤에 집으로 와서 몸을 씩고 밥들 먹어습니다..." 남북 분단이 이후 15일 처음 실시된 화상상봉장에 누런색 종이를 잘라 나일론끈으로 엮어 만든 어른 손바닥 만한 크기의 빛바랜 일기장 한 권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 일기장에는 보리밭을 매거나 땔감을 구하기 위해 산에 나무를 하러 간 얘기, 장작을 패고 동생들과 연을 만들어 날리던 얘기 등 지금은 아득한 옛 시골 아이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충북 진천군에서 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하다 6.25 전쟁 발발과 함께 북한 인민군에 의해 의용군으로 끌려간 북녘의 안영근(73) 옹이 일기장의 주인공이다. 안 옹은 서울(경성)과 인천 나들이를 통해 본 `사람 숭내(흉내)를 잘내는 원싱이(원숭이)'와 넓은 바다, 배, 군함, 염전 등에 대한 여행담을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일기에 담기도 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 틈틈이 연필로 써내려간 안 옹의 일기는 그동안 몇장의 빛바랜 사진과 함께 가족들에게는 소중한 `징표'가 되어왔다. 이를 나타내듯 동생 용근(70)씨 등 남쪽 동생들은 이날 만날 북녘 형님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이날 상봉장에 일기장과 추억이 담긴 사진을 보자기에 소중히 싸왔다.영근씨는 이날 화상상봉에서 남측 동생들이 일기장을 꺼내는 순간 "내가 쓴 것"이라며 추억을 되살리며 기뻐했다. 영근씨는 "국민학교 6학년이자 해방되던 1945년께 한글을 배우기 시작해 한 달정도 지나 쓴 것"이라며 일기 곳곳에서 맞춤법이 틀린 나름대로의 이유를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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