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할아버지가 남쪽으로 내려와 낳은 딸 인숙, 해영씨는 "어머니는 왜 안 나오셨니"라는 언니들의 질문에 "평생 영숙, 혜숙 두 언니를 그리워하다 지난 1월에 돌아가셨다"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눈물을 흘리는 여동생들을 달래던 영숙, 혜숙씨도 남동생 동우씨가 생전의 어머니 사진을 보여주자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1시간 30분간의 화상상봉을 마친 북의 두딸은 "아버지, 저희들을 똑똑히 보세요. 통일되면 꼭 만나요"라며 큰절을 올리며 헤어짐을 아쉬워 했다. 김 할아버지도 "잘 자라줘서 고맙고 건강한 모습 볼 수 있어 꼭 다시 태어난 것 같다"며 반가움과 아쉬움을 전했다. (수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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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되면 집 사주려고 적금 들었단다” |
"아버지, 오랜만에 딸들 절 받으세요", "통일되면 (북의 두 딸에게) 집 사주려고 적금 들었단다"
김산해(97.경기도 용인시 구성읍) 할아버지는 15일 오후 2시 대한적십자사 경 기도지사 5층 화상상봉장에서 반세기만에 북에 두고 온 두 딸 영숙(63), 혜숙(60)씨의 큰 절을 받고 눈시울을 붉혔다.
개성사범학교 교사였던 김 할아버지는 1950년 12월 부인 최영애(92. 2005년 1월 작고)씨와 큰아들 대우(67. 89년 8월 작고), 둘째딸 현숙(65. 64년 10월 작고), 셋째아들 동우(55)씨 3남매를 데리고 남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잠시 동안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영숙, 혜숙씨를 개성 장모님댁에 잠시 맡겨둔 것이 56년 이산의 한으로 남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김 할아버지는 영숙, 혜숙씨를 금방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못지킨 미안함에 화면에 나온 두 딸을 보고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김 할아버지는 56년이란 세월의 간극이 말해주듯 두 딸 얼굴에 팬 주름을 지켜보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아들 동우씨는 "아버님이 통일되면 북의 누이들을 빨리 보러간다고 인천에서 줄곧 살아 오셨고, 집이라도 얻어준다며 자식 모르게 적금을 들어 놓았다"고 귀띰했다.
지난 74년 인천에서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직한 김 할아버지는 교사출신 답게 북의 딸들에게 학창시절을 물었고 영숙, 혜숙씨는 "아버지를 닮아 우리 모두 머리가 좋아요"라고 화답, 웃음꽃을 피웠다.
김 할아버지가 남쪽으로 내려와 낳은 딸 인숙, 해영씨는 "어머니는 왜 안 나오셨니"라는 언니들의 질문에 "평생 영숙, 혜숙 두 언니를 그리워하다 지난 1월에 돌아가셨다"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눈물을 흘리는 여동생들을 달래던 영숙, 혜숙씨도 남동생 동우씨가 생전의 어머니 사진을 보여주자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1시간 30분간의 화상상봉을 마친 북의 두딸은 "아버지, 저희들을 똑똑히 보세요. 통일되면 꼭 만나요"라며 큰절을 올리며 헤어짐을 아쉬워 했다. 김 할아버지도 "잘 자라줘서 고맙고 건강한 모습 볼 수 있어 꼭 다시 태어난 것 같다"며 반가움과 아쉬움을 전했다. (수원=연합뉴스)
김 할아버지가 남쪽으로 내려와 낳은 딸 인숙, 해영씨는 "어머니는 왜 안 나오셨니"라는 언니들의 질문에 "평생 영숙, 혜숙 두 언니를 그리워하다 지난 1월에 돌아가셨다"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눈물을 흘리는 여동생들을 달래던 영숙, 혜숙씨도 남동생 동우씨가 생전의 어머니 사진을 보여주자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1시간 30분간의 화상상봉을 마친 북의 두딸은 "아버지, 저희들을 똑똑히 보세요. 통일되면 꼭 만나요"라며 큰절을 올리며 헤어짐을 아쉬워 했다. 김 할아버지도 "잘 자라줘서 고맙고 건강한 모습 볼 수 있어 꼭 다시 태어난 것 같다"며 반가움과 아쉬움을 전했다. (수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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