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계속이냐, 휴회냐, 결렬이냐 갈림길
2단계 제4차 6자회담이 경수로의 제공 여부를 놓고 북미가 날카롭게 맞서면서 나흘째인 16일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참가국들은 전날 오후 4시께부터 2시간 가까이 이뤄진 전체회의에서 논의를 지속해 나가자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직후 북미 양측은 각각 경수로 제공과 경수로 논의 불가를 내세워 공세를 더욱 강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은 대변인 발표를 통해 흑연감속로 포기의 대가로 경수로 제공이 없이는 신뢰 형성이 불가능하다고 했고 미국측은 경수로라는 단어가 협상 테이블에 나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보이면서 절충점 모색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중국이 전날 우리측과 만찬협의를 토대로 이날 각국과 양자접촉을 통해 북미간 협상을 붙일 수 있는 회담 진전방안을 내놓을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나 한국의 중재안이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회담이 이어지기 보다는 휴회를 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북한과 미국의 입장이 너무 강경한 만큼 만의 하나 결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끝장토론 이어질까 = 북미 양측의 스탠스는 너무나 선명하다.북한의 논리는 자신들은 핵포기할 결단을 내렸는데 미국이 이에 상응하는 조치의 핵심인 경수로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대북 적대시 정책이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간주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뢰조성의 기본이 경수로라는 주장인 셈이다. 반면 미국은 핵폐기를 위한 6자회담 자리에서 다시 경수로를 제공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CVID)를 지난 해 2월 2차회담 때까지 명시적으로 주장해온 점에 비춰 경수로 제공은 물론 경수로라는 단어를 공동문건에 집어 넣은 것 조차도 꺼리고 있다는 관측인 것이다. 그렇다면 협상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선 참가국들이 이번에는 최소한의 `말 대 말' 합의를 공동문건에 구체화하고 싶은 의지가 강하다는 점이 긍정적인 측면이다. 내용상으로는 의장국으로 중재자 역할을 해온 중국과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자세를 보여온 한국이 중재안을 제시할 경우와, 북한이 스스로 경수로 제공 요구를 철회하고 그보다 낮은 수준의 카드를 제시할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우선 중재안은 경수로를 당장 제공하겠다는 합의는 불가능하지만 미래의 문제로 그 이행 시기를 뒤로 미뤄두는 방법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리측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15일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리, 경수로를 가질 수 있는 그런 기회의 창은 열려 있다는 게 한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먼저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이룬 뒤 북한이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받는 조건이 충족된다면 향후에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논리인 셈이다. 이와 함께 북한의 태도 변화 가능성은 북한이 이번 회담 기간에 아직 `히든 카드'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예측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는 경수로를 달라는 카드가 북한이 협상장에서 실리를 극대화하기 위해 던진 최대치를 담은 것이라면 협상과정에서 절충의 여지가 있는 완화된 요구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는 관측인 셈이다. 이 두가지 경우의 수가 현실화되면 베이징에 팽배한 `추석 전 휴회설'을 불식시키고 끝장토론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조기 휴회로 봉합할까 = 하지만 중재안이 반영되거나 북한의 태도 변화가 이뤄질 가능성은 어느 한 쪽의 결단 없이는 가시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북한이 이미 대표단 대변인의 기자회견 자리에서 경수로 제공 요구를 공식화했다는 점은 경수로 제공을 합의문에 명시하거나, 아니면 그를 대신할 만한 상응조치가 없이는 주장을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관측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내부적으로 미래의 경수로라 하더라도 수용이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게 회담장 안팎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 경우 의장요약이나 의장성명도 없는 결렬로 회담의 마침표를 찍기 보다는 조기 휴회로 일단 매듭을 지을 가능성이 높다. 결렬은 곧 파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002년 10월 북핵 위기가 조성된 이후 3년에 걸쳐 이뤄진 협상이 하루 아침에 허사가 되면 6자회담의 틀은 깨지고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 긴장이 급속히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는 관측에서다. 미국 내에서는 대북 협상파의 입지가 약화되고 강경파의 목소리가 드세지면서 북핵 문제를 다시 한번 유엔 안보리에 올려 대북 제재를 구체화하는 등 일련의 조치가 가시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북한도 피하고 싶고 피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더욱이 이번 회담장에서 결렬을 선언하는 한 쪽이 결렬의 책임을 뒤집어 쓴다는 점에서 휴회로 일시 봉합할 가능성이 높다. 1단계 회담 때인 지난 달 4일 중국측이 내놓은 4차 수정안을 북한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첫 남북미 3자협의와 야간 수석대표회의가 열리며 반전을 거듭하던 끝에 불씨를 살렸지만 결국 사흘 뒤인 7일 휴회한 것과 비슷하게 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준영 기자 prince@yna.co.kr (베이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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