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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경수로 94년엔 ‘지원’ 올핸 ’안돼’ |
미국이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엔 북한에 지원키로 했던 경수로를 10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왜 완강히 반대할까.
13일 중국 베이징에서 속개된 2단계 제4차 6자회담은 평화적 핵이용 권리의 실체로 경수로를 요구하는 북한과 이를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미국이 현격한 입장차이를 보이면서 교착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경수로에 대한 반대 입장을 거듭 밝히자 6자회담에 참가 중인 북한 대표단이 15일 밤 대변인 명의로 "경수로는 신뢰 문제"라고 반박하는 공방전이 전개되면서 이번 회담은 안갯속으로 빠져 들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을 극력 반대하는 이유로는 북한이 제네바 합의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제조를 추진해 왔다는 점이 꼽히고 있다.
경수로가 가동될 경우 이를 이용해 또다시 핵무기를 제조할 것이라는 불신이 이번 회담에서 `경수로 절대 불용'이라는 강경한 입장으로 표출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미국측은 아직도 북한의 우라늄 농축(EU) 프로그램에 의심을 풀지 않고 있다. 경수로의 핵연료 제조를 위한 우라늄 농축이 핵무기 제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심이 대북 경수로 지원 반대를 더 확고하게 만들고 있는 것.
북핵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지목해왔던 진보적 성향의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조차도 북한이 실험실 수준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어 미측의 의심은 간단히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제2차 북핵위기는 우라늄 농축 여부를 둘러싼 의혹에서 촉발됐다는 점에서 제1차 북핵위기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달라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제네바 합의는 영변 5㎿급 실험용 원자로에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추출을 동결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을 뿐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미국은 2002년 10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시인했다고 주장하면서 제네바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제네바 합의 3조 2항이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는 물론 우라늄 농축까지 금지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이행을 규정한 것을 근거로 삼았다.
결국 4차 6자회담 역시 3년 전 북.미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미측의 `의심'이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당시 강석주 외무성 부상과 제임스 켈리의 회담에 배석했던 통역관 김동현(69)씨는 "켈리가 북한의 HEU 프로그램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언급, 미측이 과연 `확증'을 갖고 있는지도 의심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만약 북한에 경수로를 허용할 경우 향후 핵연료 공급을 위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까지 인정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는 듯하다.
기술적으로 경수로 가동에 사용되는 저농축우라늄 연료는 농축 과정을 몇 차례만 더 순환시키면 핵무기 제조에 사용할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으로 쉽게 전환이 가능하다.
지금으로서는 우라늄농축 계획과 관련 미측이 증거를 제시하고 진위 여부부터 가리는 게 급선무인 것으로 보인다.
조계창 기자 phillif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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