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21 19:51
수정 : 2005.09.21 19:51
북-일 수교교섭 협의 재개 이미 합의
중·러와 정상회담도 곧 가시권 들듯
‘9·19 공동성명’을 계기로 북한의 ‘광폭 외교’도 발빠른 행보를 보일 전망이다.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의 포기’ 약속이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린 마당에선, 공동성명에 함께 담긴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 추진, 한반도 비핵화, 관련국의 경제협력 증진 약속 등의 현실화 여부가 절체절명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가짜 유골’ 파문으로 지난해 11월 이후 중단됐던 북-일 수교교섭을 위한 정부간 협의를 재개하기로 일본과 합의했다. ‘납치문제’라는 난제가 가로 놓여 있음에도, 북한이 북-일관계 정상화 추진쪽으로 먼저 방향을 잡은 것은, 북-미관계 정상화보다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덜 걸리고 경제적 이익도 높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총선에서 압승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힘’이 셀 때 문제를 푸는 게 좋겠다는 전략적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북-중, 북-러 정상회담도 곧 가시권에 들 전망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선 ‘9·19 이후’에 대비해 안전판을 마련하고, 대미, 대일 협상 및 앞으로 이뤄질 다양한 경제협력 등등에서 두 나라의 지원과 ‘담보’를 얻으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핵문제에 가로막혀 뒤로 늦춰지기만 했던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은 서울 방문에 앞서 10월 또는 11월초에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북한의 ‘모든 핵 포기’ 약속에 대한 ‘굳히기’를 시도하려 할 것이고, 북쪽도 나름의 ‘담보’을 받아내는 게 시급하기 때문이다. 6자회담 러시아쪽 수석대표인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외무차관은 지난 9일 〈인테르팍스〉 통신과 회견에서 “김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해달라는 초청을 받았으며, 그도 적당한 시기에 초청을 실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한 바 있다.
10월10일 북한은 당창건 60년을 맞는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당시인 2000년 당창건 55년 때, ‘고난의 행군’을 마감하고 21세기를 맞아 새세기로의 진격로를 열어갈 것을 천명했다. 이에 따라 2000년 10월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과 북-미 공동커뮤니케의 발표가 이어졌다. 이를 배경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1년 1월 중국 상하이를 방문해 새로운 사고에 입각한 실리 사회주의를 내세웠다. 2002년 7월1일의 7·1 경제관리개선조처는 그 흐름 위에 있었다. 5년 뒤인 이제, 4차 6자회담이 열어놓은 북핵 문제의 해결방향은 새로운 한반도의 탈냉전을 예고하고 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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