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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야다다시 (도쿄대 교수·현대한국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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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현대한국정치)
이번 베이징 6자 회담 공동성명은 북핵 뿐만 아니라 북-일 수교 문제가 명기됐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납치문제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지금까지의 6자 회담에서는 양국간 관계는 되도록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지배적 흐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북한부터 북-일 회담에 적극적 자세를 보였고, 북-일 문제가 공동성명에도 언급됐다는 점이 과거와 상당히 다르다. 유골문제 집착안해 협상재개 쉬울듯 그 배경에는 북-일 수교에 더 적극적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총선 압승이 있다. 북한은 1년 남은 고이즈미 총리의 임기 안에 수교를 이뤄내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해 전략을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북-일 수교는 양국간의 문제일 뿐 아니라 국제적 공약으로 격상됐다. 협상에 나설 북-일 양국의 책임도 그만큼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납치 문제와 함께 북핵 문제는 북-일 협상의 장애물이었으나, 이제는 6자회담이 북-일 협상을 위한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몇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자신의 임기 안에 북-일 수교를 달성해 역사적 평가를 받고 싶어한다. 두 나라는 협상 중단의 요인이었던 유골 문제에 별로 집착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앞으로의 협상 재개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납치 문제에 관해서는 무엇이 문제 ‘해결’인지 합의를 보기가 어렵다. 또 어디까지 돼야 납치 문제가 ‘해결’됐다고 볼 수 있는지도 점차 모호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경제제재 발동을 비롯한 대북 강경정책이 납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선입관’이 일본 사회에서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북-일 수교 자체를 납치 문제 ‘해결’에 연계하려는 전략 전환이 절실하다.식민지배 보상 평양선언 존중해야 단기적으로 북한의 현 체제를 전제로 하면 아무리 압력을 가하더라도 납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낙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북한이 점진적으로나마 더 개방적인 체제로 바뀌는 것이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또 과거청산 문제에 관해, 북한도 한국처럼 ‘좀더 확실하고 철저한 조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인식에 관해서는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고이즈미 총리도 계승하는 것이며, 그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다만 보상에 관해서는 2000년 북-일 평양선언에서 경제협력 방식에 따라 해결한다는 점에 두 나라가 합의를 봤다는 사실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65년 한-일 수교 때도 그랬지만, 북-일 협상이 그다지 순조롭지는 않을 것이다. 협상의 애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한-일 수교 때 미국이 담당했던 역할을 누군가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당시 한-일 간의 의사소통에 비해서도 지금 북-일 사이에는 의사소통이 적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여건에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북-미 관계가 중요한 변수이라는 점은 당연하지만, (북-일 관계에서) 미국은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 또한 지금의 중-일 관계를 볼 때 그런 역할을 할 의도는 없어 보인다. 한-일 관계 중요성 재인식 계기되야 그런데, 한-일 관계의 현 상황에서 과연 이런 조건이 마련됐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같은 민족의 입장에서 북한 편을 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일본도 한국의 입장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북-일 관계에 관해서는 한국이 촉매적 또는 중재자적 역할을 담당하기 여려운 것이 현 상황이다. 하지만 북-일 협상은 북한과 일본의 과거를 청산하고 납치 문제와 같은 현안 사항을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북-일 수교를 통해 비로소 한반도와 일본의 정상적 외교 전략관계를 수립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또한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나 동북아공동체 구축을 향한 중요한 이정표가 마련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일 수교를 이뤄내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이뤄냄으로써 한-일 관계가 한-일 양국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서로 재인식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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