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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를 아는 진정한 협상가” 명성-크리스토퍼 힐 차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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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를 아는 진정한 협상가” 명성
“힐 차관보가 단단히 화가 난 것 같더라. 김 부상을 몰아붙이는데 다시는 안 볼 것처럼 거칠더라.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도저히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였다.” 광주 망월동 참배 ‘반미주의’ 대학생 대화“가장 친근한 주한 미 대사”
“북한 차관보 같다” 자평도 제4차 6자 회담이 북한의 경수로 문제를 놓고 ‘결렬이냐 타결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아태 차관보와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부상의 설전을 지켜본 한국 회담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힐 차관보의 그런 모습을 보고 이대로 판이 깨지는 줄 알고 가슴을 졸였다고 한다. 그러나 힐 차관보는 얼마 뒤, 경수로 문구가 들어간 중국의 공동성명 초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경수로의 ‘경’자도 꺼내지 말라던 그가 ‘경수로’가 통째로 들어간 공동성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한국 회담 관계자는 그런 그를 ‘진퇴를 아는 진정한 협상가’라고 평가했다. “사람이란 보이는 것만큼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다. 상대가 당신의 이해와 부합하는 방식으로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라.” 협상가로서 힐 차관보의 이런 면모는 <워싱턴포스트>가 21일(현지시각) 분석한 그의 ‘협상의 기술’에 잘 나타나 있다. 힐 차관보는 오랜 외교관 생활을 통해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먼저 상대의 목표를 꼼꼼히 분석하는 것이 타협에 이르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체득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거기엔 반드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그 이유를 이해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바꿀 수 있다고는 자신하지 말라.” 보스니아 내전을 종식시킨 데이턴 평화협상을 주도했던 리처드 홀부르크 전 유엔대사는 그를 “똑똑하고 용감하며 논쟁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냉정’과 ‘열정’이라는 상반된 개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협상의 기술을 배가시킨다고도 추켜세웠다. 힐 차관보는 당시 마케도니아 대사로서 데이턴 평화협상에 참여했다.
힐 차관보는 미디어와 친하다. 기자들에게 말할 때 익명 뒤에 숨지 않고 거리낌 없이 자신을 드러낸다. 자신이 말할 땐 적어도 200명의 청중을 상대한다는 생각으로 임한다고 한다. 특히 인터넷 미디어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한 기자회견장에서 “여기에 인터넷 미디어가 와 있느냐. 안 왔다면 회견을 하지 않겠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는 역대 미국 대사 중에서 한국인들에게 비교적 친근감을 느끼게 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8개월 가까이 주한 미국 대사로 일하면서 광주 망월동 5·18 묘지를 참배하고, 미국인들에게 ‘반미주의의 온상’으로 비치던 대학을 찾아갔다. 미국대사관 인터넷 홈페이지에 커뮤니티를 만들어 네티즌들과 직접 채팅을 하기도 했다. 태미 오버비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부회장은 “내가 한국에 있는 18년 동안 거쳐 간 미국 대사 6명 가운데 그가 가장 짧은 임기였지만 가장 큰 족적을 남겼다”고 말했다. 일부 비판자들은 그가 이따금 훈령보다 앞서간다고 지적한다. 훈령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창의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부시 행정부의 일부 강경파들은 이번 공동성명을 곱지 않은 눈길로 본다. 이들은 북한이 다음날 경수로를 제공하지 않으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을 때 그럴줄 알았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내가 북한 차관보 같다”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협상가로서 대북정책을 놓고 심각하게 갈라진 부시 행정부에서 일하는 고충을 토로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국무부와 국방부, 그리고 백악관의 상충하는 요구를 관리하는 어려움을 기꺼이 끌어안았다. “최고의 외교는 언제나 집에서 시작한다”는 게 그의 신조다. 그는 폴란드 대사 시절, 한국 6자 회담 수석대표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를 만났다. 송 차관보도 당시 폴란드 대사였다. 나이는 송 차관보가 네 살 많지만 서로 “크리스” “민순”이라고 허물없이 부를 정도로 절친하다. 이런 인연 탓인지 두 사람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우리가 6자 회담에서 바르샤바 조약을 맺었다”라고 우스갯소리를 던지기도 했다. 송 차관보는 회담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회담장에서 각국 대표들에게 역사의 무대에서 무위도식하지 말고 역사를 만들자고 누누이 강조했다.” 난산 끝에 나왔던 베이징 6자회담 합의는 힐 차관보가 그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결과인지도 모른다. 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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