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동만 상지대 교수
|
기고
평양은 10월10일로 조선노동당 창립 60돌을 맞아 아리랑 축전이 한창이다. 집권당으로서 위치를 유지하는 경우로서 공산당이 태어난 지 60년 이상 된 나라는 북한(북조선) 이외에는 중국과 베트남 밖에 없다. 모두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소련이나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한 것과 달리 이들이 생존을 해나가는 이유가 내셔널리즘과 사회주의의 결합에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하지만 중국과 베트남이 70년대 말, 80년대 초부터 개혁·개방 노선을 단행하며 시장경제를 진전시키면서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는 데 반해, 북한은 90년대 초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 이래 만성적인 경제위기에 처해 있다. 2002년 7월에야 시장적 요소를 도입하고 경제관리체제를 개혁하는 길에 들어선 참이다. 더욱이 이미 오래 전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관계정상화를 실현하고 안보문제를 해결한 두 나라보다 훨씬 엄혹한 대외환경에 놓여 있다. 13∼14년 동안 지루하게 핵문제로 미국·일본과 씨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대내외적 여건 속에서 60돌을 맞은 북한의 인민들과 지도부가 젖어들 감회란 외부 사람들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을 것이다.
현재 북한 체제는 수명이 다한 국가사회주의보다도 ‘선군정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당 조직보다도 군이 기둥이 돼 국가를 운영해 간다는 통치방식이자 이념이다. 조선로동당의 김정일 총비서는 국가수반인 국방위원장으로서 선군정치를 가지고 낙후한 경제를 현대화해 21세기 강성대국을 건설해 간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북한이 이런 목표대로 갈 수 있을지 전도는 결코 낙관할 수 없어 보인다. 우선, 선군정치란 분명 정상체제는 아니며, 일종의 ‘위기관리체제’를 제도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체제가 과거 제3세계 군부정치의 개발독재체제를 지향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지만, 군이 안보 분야를 넘어서 직접 경제발전을 담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박정희 정부 사례에서 드러나듯, 군사독재 체제들도 문민적 외양을 갖춘 ‘정상체제’로의 전환 아래서 경제발전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 정책 주체도 어디까지나 관료와 기업이었다.
더욱 어려운 과제는 경제의 ‘정상화’일 것이다. 북한체제는 시장경제화를 진전시키면서 동시에 경제개발을 수행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한 일차적 선결조건은 만성적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상당수의 탈북자들이 생기긴 했지만, 대다수 북한 인민들은 굶어 죽으면서도 자기 자리를 지킨 고지식하고 충직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시장은 인민들의 성질을 변화시키고 있다. 인민들은 생활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자기 의사를 표출할 시장이란 출구를 갖게 될 것이다. 이제 경제적 위기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치적 불만으로 연결될 공간이 주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일단 시작된 시장화로의 흐름을 되돌릴 수도 없다.
무엇보다 김정일 위원장은 63살이란 결코 적지 않은 나이다. 김 위원장은 체력과 기력이 왕성할 때 경제발전의 기틀을 놓고 싶어 하겠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 과거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권력 승계는 혁명 제1세대에서 2세대로의 승계를 대표하는 집단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 상황에선 김일성 주석의 초월적 절대권력 체제까지 계승한 것이었지만, 그는 한 세대를 대표하는 존재였다. 과연 중국·베트남이 거친 것처럼 이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의 승계가 준비된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80~90년대 북한의 젊은 세대가 경험한 것은 국가사회주의체제와 위기상황이었지, 시장적 경험이나 외부 세계의 경험은 지극히 한정된 것이었다. 권력승계란 시대의 과제를 해결할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직결돼 있다. 단순히 몇몇 아들 중 누가 좀더 똑똑해서 뒤를 이을 것인가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문제로서, 국가와 체제의 운명이 걸려 있는 일이다.
위기관리체제가 정상체제로 가기 위해서는 역시 핵문제 타결을 통한 체제 안전보장 문제의 해결이 열쇠가 된다. 대외관계가 타개돼야 외부의 투자와 지원도 본격화될 수 있다. 6자회담에서 타협을 하고 남북 경협에 문을 열고 있는 움직임을 보면 김정일 총비서는 이 과제에 정면 대응하기로 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미 중국이 지난해부터 대북 투자진출을 개시하고 있음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한국은 물론 다른 관련국들도 적극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서동만/상지대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